'놀면 뭐하니' 모처럼 공중파 예능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tvN, jtbc 뿐만 아니라 트로트로 대박을 친 다른 종편 프로그램까지 기존 공중파 예능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개그콘서트는 폐지가 결정되었고 '1박2일', '러닝맨'도 예전만큼의 이슈몰이를 하지 못한다. 일단 공중파의 퀄리티를 능가하는 대체적 미디어가 늘어나기도 했고 언제나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보는 사용자의 미디어 습관도 공중파 프로글매의 파급력을 낮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파 채널의 필요성은 크다. 높은 수준의 방송윤리를 준수하여 적당한 수위 이상의 콘텐츠를 제공받는다는 신뢰가 있는 채널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발판에서 쉽게 사람들을 끌어들기거나 인상깊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그만큼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또한 많은 비용이 드는 콘텐츠 제작비용은 광고로 충당해야 하는데 그 것조차 충당하기 까다로운 것도 공중파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그래도 '무한도전'의 다매체 시도는 '고상한' 공중파의 기준을 지키면서도 시청자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케이스다. 이 프로그램은 포맷이 없는 것이 포맷이었고, 출연자의 각 개성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주요한 축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나을 것 없을 것 같은 출연자들이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 것도 있지만, 그 결과물들을 오프라인 전시와 공연, 기념품 판매 기부 등으로 가공하는 세련미까지 유심히 본 기억이 있다.

같은 PD가 연출한 '놀면 뭐하니'는 초반 개인방송 BJ를 떠올리는 기획으로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가 점차 유재석 단독 무한도전 포맷으로 변경되는 것 같더니 '무한도전'의 여러 캐릭터를 유재석이 분화하여 채워내고 있다. 일명 부캐(부캐릭터)를 양산하면서 여러가지 미션에 최선을 다하면서 어떤 것에는 기대이상의 능력을 어떤 것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미를 보여주며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알면서 속아주는 이런 일종의 놀이 현상은 유재석의 진정성있는 노력에 의해 판을 제대로 벌리고 그 속에서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캐릭터들과 융화되어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물며 다른 프로그램에 해당 캐릭터로 출연하고 본캐라는 유재석과 분리시키는 어법은 트랜스미디어를 통한 일명 '놀면뭐하니'월드를 계속해서 소비하도록 충동질했다.

이미 펭수에 의해 가상으로 만들어낸 캐릭터가 현실에서 버젓이 그의 서사를 이어나가는 것을 수용하는 분위기에서 뒤따라 김신영의 막내이모 김다비의 흥행으로 연결되는 튼튼한 중간 다리에 '놀면 뭐하니'가 있다.

기존 캐릭터의 진부함이나 경직됨을 버리고 새로운 캐릭터로 갈아타면서 부담감을 떨쳐버리는 놀이는 왕년의 탑스타인 이효리와 비의 출연에 자연스러운 촉매가 되었을 것이다.

비는 '깡'이라는 노래로 다소 민망할 수 있는 혹평에 의해 다시금 SNS를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점이었고, 비는 스스럼없이 이에 편승하여 스스로를 인정하며 긍정적인 여론을 만드는 데 성공한 시점과 맞물린다. 깡으로 놀림받는 비가 대인배의 면모로 긍정이미지를 획득하고 '화려한 조명', '꼬만춤', 귀를 꽂는 음악비트를 밈으로 다양한 방식의 놀이로 확산되는 가운데 '놀면 뭐하니'는 공중파의 인증을 붙여 비룡으로 날아오를 참이다. 

이효리는 '자유로우면서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는 싫다'는 꿈을 실현시키기라도 하듯, '힐링','자연주의','명상' 등과 가까워진 철이 든 노는 언니 이미지에서 다시금 예전 인기 절정일 때의 모습으로 그 때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다 해보겠다는 의지가 보여 반갑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프로젝트 그룹명은 모두 쓸어버리겠다는 싹쓰리다. 개운한 어간 싹+THREE를 붙인 삼인조 혼성그룹인데 기존 룰라, 쿨, 스페이스A, 잼, 업타운 등 다양한 혼성그룹의 향수를 떠올린다. 남여의 넓은 음역을 사용하고 퍼포먼스도 강약이 들어가면서 정말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던 그 시절의 음악과 더불어 뉴트로감성, 중년의 대중문화참여의 다양한 이슈 가운데로 이들 싹3가 등장할 예정이다.

워낙 네임벨류가 있는 3명이고, 이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가진 개인 채널을 통해서도 당연히 파급력이 커지게 될 것이다. 또한 음원을 통해 반복적으로 소비될 콘텐츠는 아마 짧아도 여름에는 더 이슈를 키워내지 않을까 싶다.

미용실 200개를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의 지리는 무대매너, 하늘을 나르는 비룡과 유일한 연습생 유두레곤의 스토리텔링이 조금더 완성도를 가지고 사이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면 좋을 것 같다. 광고든, ppl이든, 다른 매체를 통한 노출이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천연덕스러움을 조금 더 활발히 퍼뜨려서 이번 프로젝트가 제대로 놀이로 완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놀면 뭐하니'는 비아냥이거나 회의적인 투의 제목이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신나게 한번 놀아보자는 충동에 가깝다는 사실을 이번에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정말 내 맘에 꼭 맞는 노래 몇개 나와줬으면 좋겠다. 신인 그룹과 함께 살떨리는 데뷔무데 꾸며줬으면 좋겠고, 이시국에 예전의 좋은 추억만 꺼내볼 수 있게 즐거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출처: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503477

 

비로소 소장 장효진.

 

 

 


WRITTEN BY
feelosophy
twitter @birosokr facebook @biroso email : chj0327@gmail.com

트랙백  0 ,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
secret

이상하다. 가족이 낯설다. 당연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어영부영 모른채 지났던 문제들이 수면위로 올라오기도 한다. 뉴스에는 아이학대와 가정폭력처럼 일상에서 조심스럽게 숨겨진 사건이 수면위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각각의 템포대로 불편하면 거리를 두고 기분이 풀리면 가까웠다가를 조절할 수 있던 시기에는 적어도 약자에게는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을지도 모른다. 조금씩 자신만의 장벽을 세우고 에너지를 비축할 시간을 벌어가면서 말이다. 그런데 마음대로 거리를 둘 수 없고 원하지 않게 함께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많아진 팬데믹 시절에 이들에게는 악몽이 따로 없을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살가운 편이 아닌 가족이 함께 더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만 한다면 대부분 어색하고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수도 있다. 사춘기만 지나도 자식과 부모사이의 애정표현은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가 더 와닿는듯 하다. 출가하고 독립한 자식이 있는 중년 부부의 삶이 황혼의 여유로움을 기대하기에는 한국 사회가 팍팍하기도 했고,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평범한 아빠는 당신의 젊은 시절 아버지들에게서 다정함을 배우지 못했다. 딱 내가 이들의 딸 쯤 되는 나이고 보니, 우리 엄마와 아빠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스물 다섯인 시절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한껏 그 시대의 멋을 부린 청년은 지금보아도 곱고 예쁘고 멋진 모습으로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 머리칼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감각 하나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표정으로 생기있고 자신감있고 편안해 보였다.

사춘기를 지나고 점차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나의 우주였던 부모님은 한없이 작아졌다. 그 시절부터 관심사는 오직 나 혹은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이 되어 버렸고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에 대한 생각은 늘 보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꽁꽁 묶어둔 채 열어보려 하지 않았던 듯 하다.

4회까지 진행된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막장드라마에서나 볼 것 같은 소재(불륜, 동성애자, 바람)를 가족 구성원에 대입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를 각성시킨다. 그만큼의 충격적으로 대입된 평범한 가족의 민낯에 '내가 정말 아는 것이 없었다'는 놀라움과 함께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게으름, '알리지 않은 상대방에게의 서운함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왜 엄마는 졸혼을 요구하는 것일까. 왜 아빠는 자살을 기도하려 한 것일까. 혹시 아빠는 외도를 해서 숨겨둔 자식이 있는 가, 언니는 남편의 비밀을 알면서도 묵인한 것인가, 대놓고 바람을 피는 썸남의 대시를 왜 뿌리치지 못하는가 등등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여러가지 갈등과 충격과도 이어질 이러한 복잡한 퍼즐을 마치 나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가만히 맞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가족은 아버지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22살 청년이 되버린 상황에서 각성된다. 아버지가 자신들보다 어린 청년이 되고 보니, 부모님이 처음 만나 가족이 되었던 38년 전의 생기와 자신감 넘치는 청년의 모습에 새삼 놀란다. 그에게는 누구보다 사랑한 아내가 있었다. 자식들은 삶을 되돌아 보게 되는 사건이 되었고 하필 자신들에게도 들이닥친 위기에도 가족 서로를 보듬어 이겨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새로운 국면이 만들어지는 드라마가 아니라도, 우리 일상은 매일매일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리 미뤄두는 가족과 함께있다. 그 일상에 드라마로 간접 각성된 마음을 돌려 가족간의 관심과 이해를 표현해보는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WRITTEN BY
feelosophy
twitter @birosokr facebook @biroso email : chj0327@gmail.com

트랙백  0 ,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
secret

올해 초부터 아이와의 주말 나들이를 영상으로 만들어서 유투브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자기 자식은 사랑스럽고 특별하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게 아까워 영상으로나마 남겨두고 싶은 평범한 엄마의 마음이기도 하고, 혹여 아이가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이 쪽(?)으로 나가볼 요량도 없지 않았습니다. 물론 장비빨도 편집술도 그닥이라 구독자수나 재생수가 한 두자리를 맴도는 게 현실이지만요.

그래도 네살배기 아이는 잠금만 풀려있다면 엄마나 아빠 스마트폰에서 유투브를 열고 원하는 영상을 플레이시킵니다. 보다가 중간 광고가 나오면 최소 시청시간이 지나면 바로 그만보기를 눌러버리고 몇살 많아보이지도 않는 똘똘한 아이가 등장하는 유투브 콘텐츠를 시청합니다.

어제는 잠을 자려는데, 거울을 보면서 '그럼 빠빠! 꾹꾹 눌러주세요!'하는 BJ흉내를 내더군요. 아마 구독이나 좋아요를 눌러달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흉내내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하기도 하고 능청맞은 모습이 웃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에서 말하는 포노사피엔스 원주민이 바로 내 앞에 있구나 싶더군요.

다행히 저는 미디어 기술의 수혜를 받고 자란 세대입니다. 대학때 인터넷이 본격화되어 다음이니 프리첼이니 네이트니 야후니 하는 플래폼의 이메일이란 이메일은 섭렵하고 하두리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 채팅을 하고 아이러브스쿨로 몇해 지나지 않은 초중고 동기들을 만나 첫사랑을 확인하거나 미니홈피에서 썸남의 일상을 염탐하는 요즘의 SNS의 시작을 경험했지요.

삐삐에서 씨티폰은 건너뛰고 PCS로 넘어왔다가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기기를 옮겨오면서 '8282' 또는 '482482'등의 제한된 숫자로 보내는 삐삐 메세지를 만들어 내는 것부터 기호들로 조합된 이모티콘을 재미로 만들고 그당시 고가의 공학계산기에 게임 프로그래밍을 하고 놀았던 세대입니다. 워크맨에서 CD플레이어를 거처 MP3에서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총망라한 세대이면서 SNS의 열렬한 중독자들로 모바일 마케팅의 주타깃이 되는 게 바로 우리 세대입니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들 경험처럼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의 한 시절의 편린이 곳곳에 녹아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건,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게 바로 미디어 기술을 통해 우리의 삶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카톡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전화대신 어플로 짜장면을 배달시키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의 의사소통법이나 예절에 대해서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된다는 이 책의 주장은 적극지지합니다.

<포노사피엔스>는 저처럼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4차산업, 비즈니스의 전문가로 소개된 최재붕 교수가 쓴 책입니다. 공학을 베이스로 기술을 기반한 산업과 문화에 대해 해박한 덕력을 뽐내는 것이 무척 멋져보이더군요. 같은 학부 전공에 문화콘텐츠 전공을 통해 문화브랜드와 문화기술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로서도 물론 멋진 분이라 여겼습니다.

4차산업이라는 큰 테마 안에서 빅데이터, 핀테크, 인공지능과 공유 경제 등 다양한 이슈를 쉬운말과 사례를 통해 풀어 놓은 책이라 이 주제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합니다.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 최재붕 지음, 샘앤파커스

 

단순히 핸드폰을 갖다대거나 흔들면 결제가 이루어지고, 이런저런 절차없이 지문이나 홍체인식만으로도 신원조회가 되는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의 시간을 더 만들고 창의적이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로그래밍을 배울 때, 자바라는 언어에서 캡슐화라는 용어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치 기계 부품처럼 어떤 기능을 하는 부분부분을 덩어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이해했는데, 점점 기술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더욱 간단하고 간편하게 캡슐화가 되고 서로 모듈로서 조합이 되거나 따로 또 기능하는 효율적인 모습으로 탈바꿈 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기술로부터 촉발한 기술은 통신망을 타고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학습하며 그 데이터를 불려 나가더니 이제는 스스로 미래를 예상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주변의 사물들은 서로 통신하면서 마치 살아있는 대상처럼 사람들과 소통하며 인간의 삶 속에 하나의 인격체처럼 자리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개인으로서 또다른 사람으로서 혹은 또다른 사물로서의 입장과 맥락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즐기고 이용하는 온갖 기술들에 인색해지지 않고 가끔씩은 집요하게 분석해보는 미디어 아침운동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 것에 조금은 유해지기로 했습니다. 그걸로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편집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고 그 결과를 함께 플랫폼에 올려 보는 것, 이런 과정을 일상에서 경험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당장, 잠시 손 놓았던 유투브 계정을 좀 살릴 궁리를 해야겠네요.

 

비로소 소장 장효진.


WRITTEN BY
feelosophy
twitter @birosokr facebook @biroso email : chj0327@gmail.com

트랙백  0 ,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
secret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착한드라마라고?

 

출판사를 배경으로 책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는 사명감이 사뭇 진지하며 캔디형 주인공의 일상에서 책 속의 멋진 문장을 가져다 독백하는 장면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왠지모르게 착하고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응원하게 만든다는 식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예고가 나올때 그림책처럼 조근조근 흘러가는 쪽글들도 좋았고 서글서글한 주인공들의 열정에 나까지 활력충전되는 느낌을 받았다. 초반까지 꽤나 재미있게 보았다.

 

같은 느낌을 받은 이들이 많았는지 이 드라마가 착한드라마라고 이야기한다. 대개 주인공 주변 조연급 배우들은 주인공의 사랑과 성공을 방해하는 표독한 인물로 갈등을 부추기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을 궁지로 몰아넣는 밉상캐릭터가 없다. 이 드라마의 갈등은 캐릭터간의 갈등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적 문제를 갈등으로 가지고 가기 때문에 문제를 들키지 않는 순간까지는 행복하기만하다.

극 중후반이 넘어가면서 이 갈등이 수면위로 올라오고 경단녀가 뭐라도 해보고자 해서 학벌을 낮춰서 위장취업하고 그곳에서 승승장구 인정을 받아왔으니 아마 결국 해피엔딩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내적 문제라는 것이 문제인 듯하다. 내가 주인공인 강단이에게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처한 상황을 두고 보건데, 이 드라마는 대놓고 판타지도 아니라는 점에서 현타가 오게 만든다. 과연 내 실력과 스펙을 감추면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당당한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까지는 좋다 이거다. 그런데 착한드라마라고 해서 그 과정이 어떻게 이렇게 꽃길만 같은가 하는것이다. 동료들도 처음부터 응원을 하고 선배 다른 부서 관리자들도 그가 낸 제안에 바로 수긍하고 바로 담당자로 쿨하게 중요한 일을 맡긴다. 경단녀까지는 아니어도 대여섯살만 많아도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사무실에서 쿨하게 굴면 부담스럽고 소극적으로 있으면 불편한 그런 위치가 되어도 보았고, 출산후 재취업을 할 때에도 아줌마 꼬리표는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불가피한 상황에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을의 위치가 되었다. 물론 나는 결혼 전에 엄청난 커리어를 가지지도 않았고 최상위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있을까.

서른일곱의 경단녀의 씩씩한 사회생활 도전기라지만 일단 주인공은 아이를 양육하거나 집안대소사와 관련한 자질구레한 일은 하지 않는다. 극 초반 차은호의 전여자친구 가게에서 선물로 받은 수많은 옷과 소품으로 치장한 모습은 강단이를 연기하는 이나영의 앳된 외모는 접어두고라도 여느 패션피플 못지않는 이질적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살, 여덟살 어린 총각들에게 애정공세를 받고도 수줍고 소녀같고 사랑스러울 수 있는 그를 통해 위안을 받기는 무척이나 힘이 들다. 도대체 실력능력외모되면서 아이양육이 배제된 프리한 존재라면 그동안 보여왔던 실력있고 철없는 노처녀와 연하남의 로맨스와 뭐가 다른걸까싶기도.

그래서 조금 힘이 빠졌다. 어디 나가서 여덟살 어린 총각이 들이대지도 않을것을 알고, 이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점점 더 손이 많이 갈 것이고 지난주 다녀온 면접에서는 대졸신입때보다 적은 연봉에 이런저런 부가업무를 요구하며 남편이 뭐하는지 주량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의 최악의 호구조사까지 당한 차라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소유진이 연기했던 '내사랑 치유기'의 치유처럼 고구마 백개 먹은 것같은 여성들을 보는 것은 편한 것이 아니지. 그래서 출생의 비밀로 한껏 위치를 끌어올려 놓아야 그나마 이야기를 볼 맛이 나는 지금의 상황이고 보면, 서른 훨씬 넘은 경력에 쉼표 많이 찍혀버린 경단녀들에게는 로맨스는 별책부록에나 있어야 하는 것이 맞았지.

 

비로소 소장 장효진.

 


WRITTEN BY
feelosophy
twitter @birosokr facebook @biroso email : chj0327@gmail.com

트랙백  0 ,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
secret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시간과 젊음에 대하여

한지민과 남주혁의 아름다운 외모로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눈이 부시다. 그들의 젊음과 해사한 미소는 시청자들에게 일상넘어의 무엇과도 같게 느껴진다.  그런데 한지민이 시간을 돌리는 시계를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급속도로 늙어버려 70대의 김혜자가 된다.

비록 겉모습은 세월을 50년을 달려 부모보다 늙어버린 노인이지만, 수수한 옷차림부터 죽마고우와 나누는 진솔한 이야기까지 여전히 스물다섯 꽃다운 젊은 여자다. 극도로 한정된 사람들만이 이 비밀을 알고 있는 탓에, 주눅들고 안으로 안으로 움츠려들만도 하지만 혜자는 마음에 두었던 준하의 방황이나 기어코 살려놓았지만 불행한 아버지의 뒷모습에 손놓고 있을 수많은 없다.

촬영기법이나 소품같은 소소한 연출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할 때 반짝이는 눈망울이나 거침없는 행동들이 연기자 김혜자가 정말 스물다섯 여자의 영혼을 가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기 충분하게 한다. 손주벌 젊은 남자배우와의 투샷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극에 충분히 빠져버렸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고.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지브리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올렸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개인적으로 지브리의 작품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소피다. 그에게 빠진 이유는 한순간 늙어버린 자신에 좌절하지 않는 모습때문이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라서 내가 노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노인이 된다는 것은 유한한 인생의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과 함께 소위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펼쳐내지 못한 수동적이고 수렴적인 시기라는 암울한 생각에 더 주인공에게 저주로 느껴졌다. 그러나 한 리뷰어가 얘기한대로 소피는 오히려 자기의 인생에 솔직하지 못한 애늙은이였고 노인이 된 이후에라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 정면으로 당당하게 부딪혀 도전하고 사랑을 지키는 눈이부신 젊은이가 되었다.

 

조금만 힘이 들거나 하기 싫은 일에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찾을 때 나는 스스로가 소피가 되었으면한다. 지금의 껍질뿐인 저주는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고, 혹시 극복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주어진 인생이라면 손놓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인생의 다짐같은 것이 되었다.

<눈이 부시게>에서 혜자도 <하울...>의 소피처럼 세상에 적당히 자신의 깜냥을 알고 움츠려든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마법같이 걸려든 시간의 농간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주변을 비추는 밝은 사람으로 더 씩씩하고 아름다웠다.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주인공 팀은 혜자처럼 시계가 필요하지도 않고 시간을 되돌리는데 절대등가의 법칙에 의해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더이상 쓰지 않고 평범한 시간을 온전히 살아가기로 한다.

어쩌면 시간을 거슬러 다른 인생을 살아봐야만 자신의 별것없어 보이는 평범한 인생의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움이 도드라지는지도 모르겠다. 가족과의 사소한 시간,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 배부르게 먹고 나른한 저녁 텔레비전을 보는 소파의 시간을 건너뛰고 무슨 행복하고 거창한 인생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바람이라면 드라마의 끝에는 혜자가 자신의 시간으로 잘 돌아가 행복한 일상을 하루하루 꼬박꼬박 살아가기를, 소피가 젊음을 되찾고도 자신의 삶에 솔직하고 당찬 모습을 잊지 않은 것 처럼 늙은 혜자의 표용력과 주변을 비추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기를.

비로소 소장 장효진.

 


WRITTEN BY
feelosophy
twitter @birosokr facebook @biroso email : chj0327@gmail.com

트랙백  0 ,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
secret

유투브채널 시작, 지우의 소소한 놀이영상

유투버들이 얼마 번다더라... 하는 뉴스가 부러움이 되기도 하지만 손쉽게 영상을 찍고 저장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는 건 편리한 일이기도 합니다.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기록하고 간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참에 유투브 채널을 하나 열어보았습니다.

지우가 커가면서 호기심도 많아지고 이야기를 담은 놀이를 하게 되면서 함께 노는 영상을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시대는 조금 경직되어 있지만 아이들은 모바일을 통해 이런저런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인듯합니다. 언젠가 보았던 다른 유투브 영상의 언니처럼 흉내를 곧잘 내기도 하고 영상을 촬영해도 긴장하거나 경직되는 게 없는것이 타고난 게 아닌가 하는 고습도치 엄마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My Lovely Pearl : https://www.youtube.com/channel/UC-0QR8v7MtCc7cWMmAnSuLQ>

 

지우와 놀면서 이런저런 영상을 찍어 올리는 채널이 될거에요. 책도 같이 보고 소꿉놀이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그런 영상들을 모아 올려두려고 합니다. 벌써 몇개가 되었네요. 아무런 편집없고 두서없지만 귀여운 몸짓과 목소리에 시간가는 줄 모르겠어요.

아직 시험적으로 올려만 보고 있는 중이라 이렇다할 콘텐츠는 없는 편이지만, 마이크나 조명, 거치대 등 장비도 좀 알아보고 편집도 조금 신경쓰면서 콘텐츠 품질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주제는 장난감놀이도 좋지만 그림책 함께 읽고 노는 영상을 주로 찍어 보려고 합니다. 그림책은 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나와서 항상 재미있거든요. 지우와 쿵짝도 잘 맞고요.

 

숫자 팝업북을 가지고 놀았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등장하는 동물 이름을 물어보기도 하고 우리 가족과 함께 이야기도 해보면서 숫자를 세어보는데 요즘은 숫자를 잘 세기도 한답니다.

예쁘다는 말보다는 멋지다는 말을 하고 사랑한다, 최고다라는 말을 좋아하는 딸과의 추억을 잘 쌓아나가볼 생각입니다.

아직 지루하고 재미없을 수 있지만 응원 차원에서 구독 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지금 구독자는 지우 아빠 한명이라는!

 

모바일 편집 어플도 다운받고 좀 더 박차를 가해보겠습니다!


WRITTEN BY
feelosophy
twitter @birosokr facebook @biroso email : chj0327@gmail.com

트랙백  0 ,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
secret

[책]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이미지 홍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제는 동영상이 검색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초록색 검색창이 아니라 빨간색 검색창에서 궁금한 것을 직접 시연하거나 말로 조목조목 설명하는 동영상을 찾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글을 잘 쓰고 싶어한다. 글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는데도 글을 잘 쓰려는 사람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시민이 밝힌대로 문학적 글쓰기는 어쩌면 타고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상황을 적절하게 비유하고 그 전후 관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쓰는 감각은 훈련으로 만들어내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타고났다는 사람들은 그저 직관으로 그 문맥을 만들고 구성을 하여 읽는 이들의 무릎을 탁치게 만들테니까. 

실용적 글쓰기라면 훈련이 가능하다는 생각에도 동의한다. 이런 글은 쓸수록 형식에 적절한 표현과 소재를 선택하는 능력이 늘어나고 쓰면서 자기 글의 단점을 더 잘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할 때 실용적 글쓰기의 필요성은 항상 넘쳐난다.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나 보고서, 제안서 등등 직접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기자들과 같은 직업이 아니어도 글을 일목요연하고 또렷하게 적절하게 형식에 맞춰 쓰는 것은 중요하고 그 것이 실력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부터도 소논문이나 제안서, 보고서 등에서 글을 좀 더 잘 써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는데 어느정도 다작을 하다보면 다른 이들의 글을 열심히 보게 되고 그러다보면 흉내도 내다가 얼추 나아지는 낌새를 느껴보기도 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다보면 아무래도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그러다보면 단어나 문장을 좀 더 고쳐보거나 전체 글의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는 등 실전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블로그의 글을 한숨에 잠깐이라도 적어보려고 했던 시도들이나 브런치 프로젝트를 통해 내 글을 시험해본 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물론 블로그의 글쓰기는 논문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글을 쓸 때, 어떤 계기가 있어서 글을 쓰고 그 계기를 통해 어떤 깨닳음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다른 것들과 견주어 볼 기회가 있었다면 그 내용은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할만한 꺼리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계기가 있었고 글을 썼지만 그 감흥과 그 교훈은 자신의 머리속에만 두고 그 결과만 써두었다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이글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어떤 주제에 맞게 곁다리로 빠지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 자기 글의 생각을 판단할 수 있는 자세로 구체적인 자료를 적절하게 제시할 것을 비책으로 꼽았다. 편견에서 비롯된 생각이나 하나의 사례에 불과한 경험을 확대 해석하는 경우 글은 독자들의 공감을 사지 못할 뿐더러 이런저런 자기 지식 자랑을 위해 필요하지 않는 내용을 끼워넣다보면 논지를 흐리기 때문에 글의 힘이 떨어지며,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자기가 생각하는 글의 주제를 좀 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글을 써야 할지말지 고민하다가 그만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지만 글을 위한 자료를 찾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생각이 가장 적당하고 다른 이들의 생각에는 박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할 때는 적절하고 그럴듯하고 잘 정리된 근거자료들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들에게 공감이나 설득을 위한 하나의 명분이 되고 나아가 그들의 의견을 덧붙이기 좋은 터전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의뢰한 글이 아니라면, 그글을 써야 하는 이유나 목적을 두고 글을 읽는 대상을 정하여 적절한 글감과 자료들을 수집하는 것이 순서이며 수집한 자료들을 통해 하나의 줄기를 잡고 주제와 제목을 잡아 적절한 글의 구성을 잡은 후에, 결국 우리가 글 잘쓴다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려한 문장을 쓰게 되는 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멋진 단어와 표현방법도 중요하지만 그런 문장이 적절한 위치에 왜 나와야 하는지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최선의 글쓰기다. 이것은 하나의 이미지나 영상으로 풀어내는 표현방식과도 연결된다. 어떤 이미지를 어떤 영상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해 머리속의 구상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하나의 언어로 풀어내는 매커니즘의 지난한 과정을 닮았을테니말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WRITTEN BY
feelosophy
twitter @birosokr facebook @biroso email : chj0327@gmail.com

트랙백  0 ,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
secret

[책] 헤테로토피아, 현실화된 유토피아 공간을 꿈꾸다

자그마한 공간을 운영하면서도 쌈지길이나 롯데월드, 사람들로 북적이는 축제공간을 떠올려보곤 했습니다. 손님들이 들어와서 공간에 머무는 동안의 경험을 어떻게 꾸릴것인지, 그 중간중간 어떤 장치를 두는 것이 좋을 지를 고민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손님들이 공간 안을 거닐며 몇걸음 움직이고 멈추고 또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동행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공간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기쁨일것입니다.

'공간'과 '장소'를 테마로 한 여러 책을 읽고 있습니다. 꽤 공들여 읽어도 그 안에서 나의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어갈 실마리를 찾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읽은 <헤테로토피아>는 그나마 분량이 적어서 어찌어찌 읽어졌습니다.

푸코가 쓴 에세이로 인터뷰나 라디오 연설 등의 글을 모아 만든 책으로 제목의 '헤테로토피아'는 비현실 공간인 유토피아와 상대되는 개념입니다. 사회 안에 존재하면서도 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그래서 온갖 장소들에 이의제기를 하고 전도시키고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 바로 헤테로토피아입니다.

 

혹은 반공간(conter-espaces)로도 불리는 이 공간은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들에 맞서서 그것들을 지우고 중화시키고 혹은 정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장소입니다. 푸코는 정원의 깊숙한 곳, 다락방, 인디언 텐트 혹은 목요일 오후 부모의 커다란 침대를 예로 듭니다.

각 문화권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습이 있고 그 생활양식에 따라 각기 다른 공간이 마련되면서 당연히 이러한 반공간들은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설령 같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사람에 따라, 또는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는 특히 어린 시절 공유한 꿈같은 시절의 상상과 호기심이 보장되던 그런 공간의 향수가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가장 오래된 헤테로토피아로 예로들었던 정원, 그것을 본떠 만들었다는 페르시아의 양탄자는 세상의 중심이 곳 '이곳'이며, 세상을 종횡무진 누비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이와 같이 다수가 인정하고마는 그런 헤테로토피아가 존재합니다. 그것을 조금 분류해놓은 부분이 관심이 갔습니다.

우선, 모든 시간, 모든 시대, 모든 형태와 모든 취향을 하나의 장소에 가두어놓으려는 의지, 마치 이 공간 자체는 확실히 시간 바깥에 있을 수 있다는 듯 모든 시간의 공간을 구축하려는 발상(p.10)의 박물관과 도서관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시간을 정지시키고 특권화된 공간에 무시간을 누적하여 보편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을 숙명으로 합니다. 현시대의 특징적 공간이라 일컫는 이 박물관과 도서관은 렐프의 무장소와 비교하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더 고민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다른 헤테로토피아는 바로 한시적인 헤테로토피아입니다. 축제나 공연장, 시장이나 마을 변두리의 공터, 휴양지를 예로 듭니다. 이 헤테로토피아는 시간을 지우고 벌거숭이 원죄의 순수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한 연구자는 우리나라 제주의 한달살기 등과 같은 제주 이주의 삶을 이 헤테로토피아와 연결하여 연구하기도 했더군요.

그리고 통과, 변형, 갱생의 노고와 관련된 헤테로토피아도 있습니다. 기숙학교나 병영, 감옥등이 그러한 예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헤테로토피아에 자유롭게 들어가지는 않고 특정한 의례나 의식이 필요하기도 한 공간입니다.

세계에 닫혀있지 않고 열려있는 헤테로토피아도 있습니다. 누구라도 거기 들어갈 수 있지만, 사실 일단 들어가고 나면 그것은 환상일 뿐, 어디에도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감하게 된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공간입니다. 열려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찌감치 입문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매음굴과 같은 헤테로토피아도 언급됩니다.

이러한 헤테로토피아의 공통적 특성은 현실 공간의 이의제기로 정리되는데, 그 방식은 헤테로토피아 외의 현실공간이 환상이라고 고발하는 환상을 만들어내거나 반대로 사회가 무질서하고 정리되어 잇지 않고 뒤죽박죽이라고 보일만큼 주도면밀하고 정돈된 또다른 현실 공간을 실제로 만들어 냄으로써 가능하다고 합니다.(p.24)

또 다른 글에서 우리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눈을 뜨면서부터 나는 더이상 이 장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p.28)라는 말로 우리의 몸에 대한 장소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내몸, 이 가차없는 장소. 만일 내가 그림자라든지 마침내 더이상 제대로 쳐다보지 않게 된, 삶에서 흐려진 일상의 갖가지 사물들, 그러니까 매일 저녁 창문으로 우툴두툴 보이는 이 지붕이나 굴뚝 들과 더불어 살듯, 내가 내 몸과 다행스럽게도 그런 오랜 친숙함 속에 산다면 어떨까?(p.28) 우리의 벗어날 수 없는 몸과 관련하여 이집트의 미라는 부정되고 미화된 몸의 유토피아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아니 정말로, 내가 불투명한 동시에 투명하고, 가시적인 동시에 비가시적잉고, 생명인 동시에 사물이 되는 데는 마술도, 요정의 나라도, 영혼도, 죽음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유토피아이기 위해서는 내가 몸이기만 하면 된다. 나로 하여금 내 몸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던 모든 유토피아의 모델, 그 적ㅇ용의 원점, 그 기원의 장소는 바로 내몸 자체였다.'(p.33) 내 몸에서 유토피아가 나왔고 유토피아가 몸을 배반했다는 선언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회적이며 현존하며 그것 안에서 환상을 이야기하는 유토피아가 나왔다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더 가치있게 들리니까요.

거울에 관한 부분도 가상의 공간과 관련한 연구와 연결하여 기억해두려 합니다. '말하자면 내개로 드리워진 이 시선에서부터, 거울의 반대편에 속하는 이 가상공간의 안쪽에서부터 나는 나에게로 돌아오고, 눈을 나 자신에게 다시 옮기기 시작하며, 대가 있는 에서 자신을 다시 구성하기 시작한다. 거울은 헤테로토피아처럼 작동한다. 그것이 내가 거울 안의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절대적으로 현실적인 동시에 절대적ㅇ으로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기에 그렇다. 그 자리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며, 그것이 지작되려면 [거울]저편에 있는 가상의 지점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저메서 비현실적이다. '(p.48)

뒤이어 푸코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 신화적인 동시에 현실적으로 일종의 이의제기를 하는 상이한 공간들을 연구, 분석, 묘사하는 기술방식을 앞서 언급한 내용을 여섯가지로 다시 정리해두었습니다.

'번째 원리는 계의 문화에는 헤테로토피아를 구축하고 있는데 신성시되는 위기의 헤테로토피아와 일탈의 헤테로토피아로 구분된다. ... 두번째 원리는 이전부터 존재한 헤테로토피아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시킬 수 있다. ... 세번째 원리는 양립불가한 복수의 배치를 한 장소에 구현할 수 있다. ... 네번째 원래는 시간의 분할과 연결되는데 이때 대칭적으로 헤테로크로니아의 개념을 들어볼 수 있다. 이 헤테로토피아와 헤테로크로니아는 상대적으로 복잡한 방식으로 조직되고 배열된다. ... 다섯번째 원리는 그것을 고립시키거나 침투할 수 있는 열림과 닫힘의 체계를 전제하며  ... 마지막 원리는 환상과 질서의 두가지 축에서 기능을 가진다는 것이다.'

작은 동네 서점이나 골목의 작은 가게들로부터 문득 일상 외에 새로운 경험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에서 맞는 환상적이거나 극도로 계산된 치밀한 연출에 의해, 때로는 시간이 축적되거나 삭제되버리는 마법같은 공간을 꿈꾸는 기획자라면 우리 '지금 여기'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떤 모습인가를 상상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비로소 문화기획자 장효진입니다.


WRITTEN BY
feelosophy
twitter @birosokr facebook @biroso email : chj0327@gmail.com

트랙백  0 ,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
secret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 일상을 문화로 채우는 공간들


사실, 문화로 채우는 공간이라는게 공간만 놓고 본다면 재미없을 때가 많습니다. 독특한 컨셉으로 꾸며진 공간도 한두번이면 금새 흥미가 달아나기 때문에 공간만의 매력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곳을 자꾸 찾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거나 그곳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싶거나 그곳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 공간을 채우는 문화라는 것은 그 공간과 방문하는 사람의 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문화라는 말의 시작이 사람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무언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본다면, 문화를 토대로 유지되는 공간은 당연히 사람들이 서로 작용-반작용을 해 가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있어야겠죠. 공간이 작다면, 그만큼 공간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고 그 사람들은 결국 타인이 아닌 주변인, 지인이 되어 눈이라도 한번 더 마주하고 점점 얼굴을 익히기 쉬워집니다. 엑스트라가 아닌 주조연이 되어 의미를 만들어 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생계를 위해 문을 연 주인장과 마찬가지로 그곳에 애착을 가지는 단골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는 점차 주변 거리로 퍼져 나가게 되고 다시금 그 공간을 채우는 문화가 됩니다. 아마, 이 책에 나오는 여럿 공간들이 그러한 이야기들의 변주 정도일 것입니다. 


곧 시작될 <작은가게 하나 열겠습니다.> 강좌(신촌한겨레교육문화센터 2월 21일(목) 저녁 개강)[강의 내용보러가기])와 관려하여 이 책을 다시 열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는 교토 게이분샤에서 발견한 소비와 유통의 미래라는 부제를 달고 호리베 아쓰시가 쓴 일본책입니다.(정문주 옮김, 민음사)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공간의 모습을 둘러보는 것과 함께, 이 공간을 마주하는 작가와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작가 스스로도 서점의 운영자이며 공간을 채우는 여러가지 기획을 진행하는 사람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므로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사두고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만을 이야기 하지 않고 공간이 위치한 지리적 특성, 사람들의 특성, 주인장의 특성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내용은 공간 운영을 하기 위한 기획에서 어떤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를 느끼게 합니다. 또한 나와 취향이 맞지 않을 것 같은 몇몇 공간에 대한 비판이나 또다른 접근을 고심해보게도 합니다. 이런 간접 경험들이 모인다면 실전에서는 좀 더 깊이있는 경험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물론 일본의 사정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많이 회자되고 있는 츠타야 서점의 사례도 이제는 다양한 분석과 변형을 통해 새로운 서점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 스스로도 변화를 주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기도 합니다. 첨단 기술이 발달하고 손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이런 때일수록 직접 움직이고 땀흘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 성과를 만들어 나가는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뜻보면 쓸데 없는 것같은 행동도 지속성을 가지고 점차 공유되고 확장될수록 큰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힘을 믿게 됩니다. 


제 스스로도 올해에는 이런 공간을 발굴하는 것, 이런 공간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외에도 이런 공간을 하나 만들어 보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하나 만들어볼까 합니다. 


마음이 두근거려서 잠을 자다가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들고 하나도 피곤하지 않은 무언가를 만난다는 상상. 그것은 행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될 것입니다.


꿈을 꾸는 건강한 기획자가 되기를 바라며.


비로소 장효진이었습니다. 


WRITTEN BY
feelosophy
twitter @birosokr facebook @biroso email : chj0327@gmail.com

트랙백  0 ,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
secret

VR 영화 '기억의 재구성'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


지난 주 열린 KVRF(Korea VR Festival)에 VR상영관에는 여러 VR영화 및 다큐멘터리가 선보였습니다. 그 중 저는 <기억의 재구성>(김영갑 감독, 2017, 15Min)을 경험하였습니다. 

VR 영화가 가지는 특성은 가상현실 미디어의 특성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영리한 영화 문법의 실험이라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다양한 제작업체들은 실사를 기반으로 하든, 모두 그래픽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든 자유로운 시선의 이동이 가능한 공간안에 이야기를 적절하게 배치해 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한가득입니다. 




<기억의 재구성>또한 이러한 고민을 통해 찾은 몇가지 시도가 눈에 띕니다. 일단 기억이라는 것은 머리 혹은 가슴 혹은 추억이라는 것과 섞여 몽롱한 환상의 세계와 현실의 그 중간쯤 있을 소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기억의 부분을 추출하고 그것을 통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형사의 서사는 현실과는 다른 환상적인 제 3의 공간을 만들어 어리둥절하게도 하고 사방을 정신없이 둘러보는 자유를 만끽하게도 만듭니다. 


또한, 프레임이 없는 것이 특징인 VR콘텐츠에서 임의로 프레임을 덧 씌우며 회상장면을 편집해 구별한 것은 이 영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레임이 없는 서사는 공간의 현장감을 배가시키지는 반면에 주목할 것과 주목하지 않아야 할 것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이야기의 편집적 기능이 많이 둔화됩니다. 그래서 서사가 단조로워지고 사건의 전개가 박진감을 만들어 내기에 힘든 감이 있습니다. 이는 최근 개봉한 아니쉬차간티 감독의 <서치>(2018)을 보면 극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컴퓨터의 프레임은 다양한 사실에 접속할 수 있는 가장 큰 프레임이자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 다양한 감각을 곤두세워 긴장감을 유지시킵니다. 그 속에서 가족의 사랑, 이민자 가족의 사춘기 소녀의 고립, 현대 기술의 다양한 이면과 놀랍도록 재빠른 정보 등, 약 100분여의 시간동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프레임의 활용 뿐만 아니라 시점과 카메라라의 이동에 관한 고민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관객은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형사를 따라 제 3의 관찰자였다가 종반에는 희생된 여자 주인공의 1인칭의 자아가 되어 사건에서 오는 진한 여운을 가지고 끝맺게 됩니다. 카메라는 고정된 위치에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지만 주로 정면에서 사건이 진행됩니다. 캐릭터의 움직임은 많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위주가 됩니다. 그러다 카메라는 수평, 수직의 이동을 한번씩 진행하게 되는데 이 때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중요한 지점에서 나타납니다. 여자가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자유낙하를 경험하고, 여자가 이동하는 장면에서 거울과 마주하는 안타까운 장면에서 이동합니다. 


VR콘텐츠에서 스토리텔링의 전략을 찾는다는 것은 VR미디어 특유의 상호작용성의 특성과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수 있어 현전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는 장점 혹은 단점을 염두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서스펜스와 몽환적인 이미지 혹은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는 콘텐츠는 어느정도 검증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뉴스나 다큐멘터리의 가능성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VR콘텐츠 중 영화가 영화라는 장르의 대세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은 어렵더라도, 다양한 매체가 교집적으로 향유되는 현세대에게 VR미디어에서의 콘텐츠의 다양한 문법을 고민하는 것은 분명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WRITTEN BY
feelosophy
twitter @birosokr facebook @biroso email : chj0327@gmail.com

트랙백  0 ,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