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문화 브랜드 리뷰/영화 리뷰

파반느, 그가 기다릴 까봐 한달음에 달려갈 만큼의 사랑 해봤니?

비로소 소장 2026. 3. 4. 17:47
반응형

대개 로맨스 영화라면 아름다운 남녀 주인공의 애닳는 클로즈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파반느의 주인공들은 정말 현실 찌질했던 우리의 예전 그 모습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본래 키크고 잘생긴 문상민 배우(경록역)를 데려다가 덥수룩한 머리에 피부 결도 푸석하게 표현하고 옷차림도 디자인이나 색상 고려 없이 되는대로 입혀놓았다. 직전 출연작인 <은애하는 도적님아>에서의 대군의 멀끔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다. 세상에 주눅 들었고 가진 것 없고 행복보다는 뭘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사는 그런 청년의 모습이다. 여주인공 고아성 배우(미정역)는 더 가관이다. 나름 백화점 정규직으로 수석으로 입사했음에도 점점 지하 창고로 밀려났다. 특유의 음침함, 소심함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밀려난 것이다. 그저 주어진 일을 그림자처럼 하루하루 일하는 좀비같다. 가족 빚쟁이들을 피해 하루하루가 팍팍하니 일상의 재미는 담쌓은지 오래일 수 밖에. 당연히 스스로의 외모도 가꾸지 않고 핸드폰도 없다. 뭔가 촌스러운듯한 미술효과가 더 이 영화의 개성을 더한다. 

이런 두 남녀가 만났다. 어쩌면 경록은 마치 자기 엄마를 닮은 미정을 주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잘생기고 끼많던 아빠를 잊지 못한 엄마의 그 쓸쓸한 뒷 모습을 어찌 할 수 없었던 어린 아들은 엄마와 꼭 닮은 여자를 보면 이상하게 가슴이 시렸을 것이다. 

오로라를 보러 가고 싶는 소원은 어쩌면 이룰 수 없는 허왕된 미래를 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팍팍하고 갈 길 모르는 청춘의 한 자락에 그런 꿈은 큰 돈 들여서 얻을 것 별로 없는 객기로만 보인다. 삶의 기적을 떠올리고 나의 인생을 새롭게 비출 무언가가 되어줄 만한 상징으로 오로라는 먼 나라 한국에서는 비행기값과 체류비와 적절한 기상조건이 맞아 떨어져야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경록은 애처로움으로 만난 미정에게서 반짝임을 발견한다. 그녀는 우울한 삶 속에 쳐박혀 있지만 스스로 빛을 비추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그녀를 그녀로 보게 된 경록은 또 마침 미정을 더 반짝이게 만들었다. 서로를 더 예쁘고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젊은 시절 누군가를 만나 그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더 단단하고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본 경험은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것, 그 사람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이 되기로 해본 것들은 시간이 지난 후 지금의 나를 만든 그 무엇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사랑이 끝났어도 기억에 남는다. 

 

대개 첫 사랑의 어설픈 시절, 시행착오를 겪고 내 안의 바보를 내모는 상황에서 아쉽게 떠나보낸 이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영화는 주인공의 생이별이 더 가슴 아프게 남는다. 서로를 위해 만든 스웨터와 목도리의 파란 색이 마음에 남았다. 여름의 그 더운 날의 찝찝합고 숨을 헐떡이며 배드민턴을 치던 그 순간과 누군가 보는 지도 모르게 허공에 피아노를 치던 그 시간이 한 겨울 눈사람이 다 녹도록 나타나지 않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슴에 묻는다. 

 

이 영화가 독특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언가 부족한 두 남녀를 붙여주는 요한이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철없는 날라리 같은 형이자 오빠인 두 요한은 경록과 미정을 한눈에 알아본다. 둘을 억지스러울만큼 연결시켜준다. 그의 어머니의 비극적 죽음과 그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한 어두움을 이 두 사람을 통해 지워보려한다. 죽으려 했으나 결국에 살아남은 요한은 사랑했으나 죽음으로 갈라진 경록과 미정을 행복하게 그려주려고 한다. 미정은 무너지지 않았고 밝은 햇살로 나왔다. 그들의 사랑은 오래지 않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그 짧은 계절을 어쩌면 평생 지니며 푸근하고 행복하고 단단하게 지닐 것 같다. 

 

내게도 그런 어설프고 아무것도 아니면서 아무것도 아닐까봐 걱정만 많은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지고 누군가를 동경하고 누군가를 시기하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마치 하늘의 오로라처럼 그저 입자들의 전기적 반응으로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인 그런 시점에 그 시간에 그들이 나타났을 뿐일지도 모른다. 

 

아마 영화 파반느를 떠올리면 내 평범한 일상 속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만나보았다는 그 기억들이 밀려올 것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