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라는 거친 바다를 지나는 부모들에게: 《사춘기 엄마의 오장육부》를 읽고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 정채봉,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아이를 키우며 마음이 쿵 내려앉거나 사방이 막힌 것 같은 순간마다 정채봉 시인의 이 구절을 나지막이 읊조리곤 한다. 내 일생에서 가장 커다란 지분을 차지하는 존재, 결국 나를 살게 하고 또 흔들리게 하는 아이라는 존재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최근 나민애 교수의 에세이 《사춘기 엄마의 오장육부》를 읽었다. 이 책은 사춘기라는 폭풍의 계절을 통과하는 아이와, 그 곁에서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과 애타는 사랑을 동시에 견뎌내는 부모의 시간을 다정한 온도로 담아낸 안내서이자 깊은 위로의 기록이다.
저자 나민애 교수는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 교수다. 시대를 정밀하게 읽어내는 평론가도 집에서는 예외가 없다. 혈기왕성한 사춘기 자녀 앞에서 매일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그저 한 사람의 '현실 엄마'일 뿐이다.
저자는 정답을 제시하는 전문가의 위치에서 훈계하듯 말하지 않는다. 사춘기 자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한 부모로서의 솔직한 고백을 고스란히 털어놓는다. 책의 목적은 명확하다. 사춘기라는 예측 불가능한 시기를 지나는 자녀 때문에 홀로 밤을 지새우며 죄책감과 외로움에 젖어 있는 부모들에게 "당신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 고단한 시간 역시 아이를 키워내는 눈부신 과정이다"라는 다정한 손을 내밀기 위함이다.

《사춘기 엄마의 오장육부》 중 마음에 남은 내용
책 속에는 작가 특유의 재치와 털털한 성격이 잔잔하게 녹아 있다. 읽는 내내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도 이내 가슴이 찡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간결하게 그려진 그림들과 문맥 사이에 놓인 다정한 시들은 헝클어진 마음을 순하게 다독여준다.
특히 내 마음에 오래도록 맺힌 장면들이 있다.
첫 번째는 "내 눈물을 먹고 자란 나무가 있다"라는 문장이다. 자녀라는 나무는 따스한 햇살과 영양분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부모가 홀로 삼켜낸 수많은 눈물과 속앓이를 양분 삼아 비로소 뿌리를 내리고 곧게 서는 법이다. 작가가 아파트 단지 내 그 나무 앞을 지날 때마다 서로 알아채겠구나 싶어 가슴이 아릿했다. 나 역시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위해 마음을 털어놓을 대나무숲 같은 나무 하나 봐두어야 하나' 하고 가만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두 번째는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늦은 밤 파워워킹으로 벅찬 마음을 달래던 작가의 일화였다. 마음이 쿵쾅댈 때 심장 박동을 오히려 가파르게 올리며 땀을 쭉 빼고 나면 개운해지는 그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어두운 밤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분노와 슬픔, 미안함과 사랑을 털어내려 애쓰던 그 고단한 발걸음에서, 이 시대 모든 부모의 외로운 뒷모습을 보았다.
세 번째는 사춘기라는 거친 바다에서 만나는 남편의 3가지 쓸모에 대한 재치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지적이었다. 작가는 남편의 존재 가치를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남들에게 할 수 없는 내 자식 흉을 맘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최적의 소통창구라는 점.
둘째, 아이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을 함께 간직한 육아 동지이자 기억의 아카이브라는 점.
셋째, 아이와 격렬한 마찰이 일어날 때 열을 식혀주는 서로의 소방수이자 중재자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부모라는 외로운 섬에서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배우자의 존재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다정한 대목이었다. 남편에게 우리 서로 이런 존재가 되어주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책 말미, 저자 자신이 사춘기를 거쳐온 딸로서 부모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감사해하며, 머지않은 이별의 시간을 떠올리고 먹먹해하던 장면 역시 깊은 잔상을 남겼다. 저자의 아버지인 나태주 시인은 〈딸〉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아직도 나는 세상에서
너보다 더 예쁜 꽃을
본 일이 없단다.
— 나태주, 〈딸〉
자식 앞에서 평생을 ‘을’로 살아온 아버지의 숭고하고 아가페적인 사랑이 시 구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부모의 고통 역시, 결국 이토록 유난스럽고 깊은 내리사랑의 다른 이름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사춘기에 접어들지 않은 아이를 둔 나에게 이 책은 간접경험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미리 키워주는 다정한 ‘예방주사’와 같았다. 한편, 지금 한창 사춘기 아이와 매일 거친 바다를 지나고 있을 동생에게는 벅찬 호흡을 가라앉혀 줄 따뜻한 ‘안정제’가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1인 기업가이자 워킹맘으로서 나는 늘 삶의 균형과 비전을 고민해 왔다. 워킹맘의 행복을 탐구하며 내가 그려나가는 ‘비로소 행복지도’의 핵심은, 내 삶의 주권을 타인이나 환경에 넘겨주지 않고 ‘내 마음의 주인’으로 서는 것에 있다.[관련 글]
그러나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행복지도는 자주 흔들린다. 자녀의 작은 반응 하나에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행복지도의 좌표가 모조리 어그러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나민애 교수가 늦은 밤 파워워킹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부모님이 건넨 내리사랑의 깊이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달랬던 것처럼,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 필요한 것 역시 내 마음의 중심을 다시 잡는 일이다.
자녀의 사춘기는 부모에게 있어 ‘독립과 분리’를 받아들이는 통과의례다. 나태주 시인의 노래처럼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으로 내게 왔던 아이가 스스로 숲을 이루러 떠날 준비를 할 때, 부모 역시 아이라는 좌표에서 벗어나 다시 나 자신의 행복지도 위에 바로 서야 한다.
아이의 거친 말과 태도에 내 삶 전체가 흔들리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라는 고백을 품은 채 내 삶의 리듬을 지켜내는 것. 아이가 자기만의 우주를 찾아 나갈 때, 부모 역시 자신의 사유와 일상을 단단하게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부모와 자녀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사춘기라는 긴 터널을 지나는 모든 현생엄마들과, 그 터널을 미리 바라보는 예비엄마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등대가 되어줄 것이다. 홀로 밤길을 걸으며 마음을 달래던 그 눈물겨운 발걸음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 모든 고단함 끝에 비로소 단단한 삶의 가치가 남겨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https://www.youtube.com/shorts/YyTK8ioXBgQ

시대의 기술과 문화, 그 안에서 삶의 가치를 읽습니다.
비로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