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들쥐>, 짝퉁 명품을 가지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넷플릭스의 <들쥐>를 정주행했다. 대사의 반을 차지하는 욕설에 대한 거부감이나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을까'싶은 안타까움같은 것이 불호의 원인이라면, 진짜와 가짜의 대립에 몰입하다가 그 진짜와 가짜가 전복되는 순간의 충격이 이 드라마를 볼만한 것으로 만드는 지점이었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언뜻 <레이디 두아>의 남자버전인가 싶다. 가짜 명품을 진짜보다 더 그럴듯하게 만드는 사라를 시기하고 그래서 유명한 대사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어떻게 가짜라고 할 수 있죠"라는 말로 진짜를 넘본 가짜 사라는 죽임을 당했다. 또 하나 공통점이 있는데, 이 진짜라는 것마저도 진짜일 수 없다는 지점이 가짜들을 폭주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레이디 두아>의 사라는 가짜 명품을 만들었고, 문재는 원래 문재의 대체자였기 때문이다.

(여기부터 스포일러 있어요.)
그런데 <들쥐>는 그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게임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비록 피로 엮인 관계가 아닐지라도 제문재라는 이름을 먼저 가진, 그래서 어쩌면 진짜진짜인 제문재였던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본인조차 자신이 진짜진짜인지도 모른채 인생 자체를 외롭게 떠돌던 사람이 진짜진짜였던 것이다.
또 하나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살인자ㅇ난감>이다. 원초적 감각을 타고난 이탕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우연의 상황마다 악인들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는 부분이 닮았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그 죽이는 과정은 언뜻 선량했던 보통의 대학생을 욱하게 만들었으나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의도하지 않은 사건을 덮는 거짓말이 증폭되어 결국은 쫓기는 연쇄 살인범이 되어가는 과정이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걷잡을 수 없는 인생의 추락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의도하지 않았으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탕의 주장이다. 이미 연인과 친구에게 했던 기만과 절도를 덮는 거짓말들은 그의 본성을 드러낸다. 타고난 살인자. 그리고 다행히 '죽일놈'이라 불릴만한 자들이 피해자였을 뿐이다.
다시 <들쥐>로 돌아와서, 진짜진짜 제문재를 두고 가짜 제문재 두사람은 각자 자기연민에 빠졌다. 불우한 성장, 환경을 핑계삼았다. 그 뒤에 숨어서 자기 삶을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끌어내려 자기가 올라서려 하였다. 그렇게 살아내는 타인의 삶은 금방 고갈된다. 긴 여정이라는 삶을 철저히 누군가가 되었다는 목적이 달성되면 이것이 정말 '나'의 삶인지에 대한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나는 제문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장 궁금해하였고, 가짜라는 것도 처음 알았을 노자라는 캐릭터가 이들 가짜들에게 정답을 알려준 것 같다. "니가 진짜든 가짜든 니가 니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자기가 가진 모든 돈을 꺼내줄 때 한 말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악랄했던 사람이었을지 모르는 그가 자기 과거 업보를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서너차례 죽을 고비를 맞으면서도 멀쩡하게(팔하나만 움직이지 않게 된) 살아낸 것을 보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고, 누구도 아닌 자기로 사는, 그리고 그걸 증명할 누군가가 있는 삶의 따뜻함과 소중함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40대 아줌마가 좋아하는 해피엔딩이라 마음 놓였다.
진짜진짜 제문재는 오히려 다른 이름으로 자기의 삶을 살아왔다. 비록 여러차례의 상처로 시니컬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결혼도 위기를 겪었지만 누구보다 자기를 위하던 외삼촌의 존재로 가족의 울타리라는 지켜냄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결국 진짜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