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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해석/비로소 책방

어린 배태랑이 바라본 세상 <엄마 그거 기억나?>

by 비로소 소장 2026.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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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랑의 유년 시절을 따라 걷다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봐도 괜찮을까?” 싶은 책이 있다.

배태랑 작가가 꾸준히 써온 『댕뇨일기』, 『나만 이렇게 우울할 리 없잖아』, 『무사히 지내자는 말과 함께』 같은 책에는 살아오며 느꼈던 솔직한 생각들이 꾸밈없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가끔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순간이나, 조금은 숨기고 싶었던 유년 시절의 한 조각을 조심스럽게 꺼내보게 된다.

가장 최근 출간된 『엄마, 그거 기억나?』 역시 그랬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자연스럽게 나의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 그때 함께했던 이웃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책은 얇지만 시작부터 강한 몰입감을 준다. 어머님이 갑자기 쓰러지고, 수술과 입원으로 평범했던 일상이 뒤흔들리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가족은 다시 평온한 일상을 되찾고, 그 후에는 젊고 어린 두 사람이 함께했던 추억,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을 천천히 따라가게 된다.

 

 

다음 해 가을, 나는 엄마에게 간의 일부를 떼어 주었다. '수면마취면 괜찮겠지'같은 낙관은 수술실 문턱에서 금세 깨졌다. 칼끝은 모두를 공평하게 아프게 했다. 우리는 배에 큰 흉터를 얻었다. 그 흉터는 아픈 기억이 아니라 '다시 산다'는 표시가 되었다.(p.12)

 

담담한 문장 속에는 이상하게 따뜻한 온기가 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는 어른의 마음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던 동네 가게 주인들의 사정은 어린아이였던 그때 알 수 없었다. 해 질 무렵 “밥 먹으러 오라”고 찾으러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는, 병실의 엄마에게 그 시절 외로웠다고 고백한다.

혼자 방방을 타다가 지쳐 바닥에 누워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던 그 순간들. 그때는 외로움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오래된 사진처럼 따뜻한 필터가 씌워진 기억이 된다.

우리 엄마도 그랬고, 우리 아빠도 그랬다.

어느 순간 나는 그 시절 부모님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와 하루에도 몇 번씩 실랑이를 하고, 나도 쉬고 싶고 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문득 떠오른다. 부족함 없이 키우기 위해 젊은 날의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부모님의 시간들이.

책 속에는 엄마와의 대화에서 꺼내온 유년 시절의 조각들이 담겨 있다. 지금은 잊힌 이름들, 여전히 이어지는 인연들, 그 시절 골목을 채웠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덩치가 큰 남학생이 다른 아이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남성성을 드러내야 했던 이야기에서는 지금의 배태랑 작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한편으로는 비디오 가게 아들이었고, CD를 100장 넘게 모았으며, 피아노와 서예 같은 예술 교육을 받았던 그의 어린 시절이 부럽기도 했다.

손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글씨를 쓰는 경험은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 걸까. 섬세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국문학을 공부하고 철학을 탐구하는 사람으로 이어진 이유도 어쩌면 그 안에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내가 어린 시절 채우지 못했던 감성과 취향을 늦게나마 발견하고 만들어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은 엄마의 긴 투병을 잘 지나온 시간을 기념하는 개인적인 기록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 사진과 가명을 사용한 친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그것은 한 사람의 기록을 넘어선다. 그 안에는 어느새 내 삶도 함께 들어와 있다. 
내가 뛰어놀던 골목, 등굣길, 분식집과 문방구, 친했던 친구와 어느 순간 멀어진 친구, 오래 기억에 남는 선생님까지. 
한 사람의 어린 시절을 따라 걷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마주하게 된다.

『 엄마, 그거 기억나?』는 그렇게 잊고 있던 마음속 골목길을 다시 걸어보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의 모든 문의는 suddnely_i@naver.com으로 하면 됩니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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