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브랜드 연구소 | 비로소1035

자존감의 두 얼굴: 〈아이 필 프리티〉와 〈파반느〉가 보여준 반짝임 영화 속에는 유독 잔상이 길게 남는 여자들이 있다. 객관적인 미의 기준으로는 '글쎄?' 싶다가도, 어느 순간 화면을 뚫고 나오는 광채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이들이다. 그 빛의 정체는 이목구비의 조화가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태도'라는 필터에서 나온다. 자존감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났지만 전혀 다른 꽃을 피운 두 영화, 〈아이 필 프리티〉와 〈파반느〉를 통해 그 반짝임의 정체를 생각해본다. 르네의 근거 있는 착각 〈아이 필 프리티〉 먼저 〈아이 필 프리티〉의 르네는 외모 지상주의의 문턱에서 매일같이 '좌절'을 수집하던 평범한 여성이다. 그러다 스피닝 기구에서 굴러떨어지는 황당한사고를 겪은 뒤, 거울 속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변했다는 거대한 착각에 빠진다. 사실 변한 건 0.1mm도 없지만, .. 2026. 3. 6.
레이디 두아, 나는 스스로 만들지만 내게 주어진 재료는 정해져 있다. 배운것이 도둑질이라고 사람들은 자기가 오래 속해있던 바운더리 안에 있을 때 존재감을 느낀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 증명을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봐주고 인정해준다면 그들의 신의를 계속 받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한계도 느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능력을 계발하고 더욱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보람도 느낀다. 그것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이 인정욕구라는 것이 자기 처지와 비교할 때 너무나 극단적으로 다른 곳이라면 차라리 포기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운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은 자기 능력 밖의 수준에서 무시와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경우 제대로된 대처를 할 수 없다. 폭발한 감정과 비이성적.. 2026. 3. 6.
파반느, 그가 기다릴 까봐 한달음에 달려갈 만큼의 사랑 해봤니? 대개 로맨스 영화라면 아름다운 남녀 주인공의 애닳는 클로즈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파반느의 주인공들은 정말 현실 찌질했던 우리의 예전 그 모습을 하고 있는 듯 하다.본래 키크고 잘생긴 문상민 배우(경록역)를 데려다가 덥수룩한 머리에 피부 결도 푸석하게 표현하고 옷차림도 디자인이나 색상 고려 없이 되는대로 입혀놓았다. 직전 출연작인 에서의 대군의 멀끔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다. 세상에 주눅 들었고 가진 것 없고 행복보다는 뭘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사는 그런 청년의 모습이다. 여주인공 고아성 배우(미정역)는 더 가관이다. 나름 백화점 정규직으로 수석으로 입사했음에도 점점 지하 창고로 밀려났다. 특유의 음침함, 소심함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밀려난 것이다. 그저 주어진 일을 그림자.. 2026. 3. 4.
[시네마 쿼드런트] 5. 수술대 위에서 찾은 사람의 자리: 네 가지 삶의 지도 [시네마 쿼드런트: Cinema Quadrant]'쿼드런트'는 원을 사등분한 사분면을 의미하는 수학 용어입니다. 정답을 골라야 하는 사지선다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위치를 확인하고 나아갈 방향을 사유하는 네 가지의 길입니다.영화라는 거울을 사분면의 좌표 위에 올리고, 그 안에서 우리 삶의 비로소 가치 있는 좌표를 찾아봅니다. 병원은 가장 적나라하게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는 곳이다. 그곳은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마지막 경계이면서, 거대한 병원 조직의 힘과 힘없는 개인의 의지가 부딪히는 사회적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의학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는 단순히 병이 낫는 과정이 궁금해서가 아니다. 이성적인 판단이 지배하는 수술실에서 가장 뜨거운 삶의 욕구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단단한 조직의 벽 앞에서 사람의.. 2025. 12. 29.
〈기술을 가진 아이〉 03-3. 복사로봇 배움이 대신 이루어질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복사로봇은 사람을 그대로 닮은 존재를 만들어 대신 행동하게 하는 도구다. 진구는 숙제도, 연습도, 귀찮은 일도 복제된 로봇이 처리하도록 한다. 적당히 조립하고 자기 머리와 선을 연결해두면 로봇은 갑자기 진구처럼 행동한다. 이 로봇은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아이의 몸은 그 외에 다른 공부를 하거나 발전적인 시간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을 자고 놀러 나간다. 생각이 막히는 순간, 틀렸다는 감각, 다시 시도해야 하는 망설임은 복제본에게 넘어간다. 아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대가없이 돌아온 결과와 배움 없는 시간이다. 이 도구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배움이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우리는 흔히 점수와 제출물로 학습이 잘 되었는가를 판단한다. 복사로봇은.. 2025. 12. 28.
〈기술을 가진 아이〉 03-2. 실물도감 지식을 꺼내는 것과 경험하는 것의 차이실물도감은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읽는 대신 책을 털어 내듯 두드린다. 그렇게 원하는 사물이나 생물이 있는 페이지를 뒤집어 치면, 그것이 실물 크기로 눈앞에 나타난다. 그림 속의 음식은 실제로 먹을 수 있고, 자동차는 운전할 수 있으며, 생물은 살아 움직인다. 지식은 설명이나 이미지로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현실로 튀어나온다. 안경원숭이를 닮았다고 놀려도 안경원숭이가 어떻게 생긴지 모르는 진구는 화를 내지 못했는데 실감도감으로 안경원숭이를 마주하자 깜짝 놀란다. 이 도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학습에 바로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 그런데 실물도감에서는 그 순서가 바뀐다. 먼저 결과가 주어지고, 경험은 그 다음에 따.. 2025. 12. 24.
〈기술을 가진 아이〉 03-1. 암기빵 저장된 기억은 지혜가 되는가시험을 앞둔 노진구는 늘 그렇듯 불안하다. 공부는 하지 않았고, 시간은 부족하다. 국어와 수학 시험이 겹친 날, 그는 노력 대신 다른 길을 찾는다. 도라에몽이 꺼내든 암기빵은 그 욕망에 정확히 부합하는 도구다. 책에 찍어 먹기만 하면 내용이 그대로 기억된다. 이해도 필요 없고, 반복도 필요 없다. 기억은 먹는 순간 몸 안으로 들어온다. 암기빵은 지식을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섭취 가능한 물질’로 바꿔놓는다. 기억은 더 이상 축적의 과정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몸에 머무는 데이터가 된다. 진구는 이 도구를 통해 공부하지 않고도 점수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시험 범위는 많고, 빵은 계속 먹어야 한다. 결국 과도한 섭취로 배탈이 나고, 효과는 사라진다. 먹은 만큼 기억.. 2025. 12. 23.
[시네마 쿼드런트] 4. 크리스마스 로코가 매년 사랑받는 진짜 이유: 사랑과 소속감을 찾는 네 가지 길 [시네마 쿼드런트: Cinema Quadrant]'쿼드런트'는 원을 사등분한 사분면을 의미하는 수학 용어입니다. 정답을 골라야 하는 사지선다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위치를 확인하고 나아갈 방향을 사유하는 네 가지의 길입니다.영화라는 거울을 사분면의 좌표 위에 올리고, 그 안에서 우리 삶의 비로소 가치 있는 좌표를 찾아봅니다.크리스마스, 일상의 중력이 멈추는 무중력의 틈새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익숙한 영화들을 다시 찾게 된다. 이는 크리스마스가 일상을 지배하던 견고한 관성이 잠시 멈추는 것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시 멈춰 서는 이 시기에는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관계의 공백이나 내면에 꽁꽁 숨기고 있던 결핍을 선명하게 비춘다. 특히 이런 붕 뜬 사이에서 영화들은 공간이 바뀌고 관계를 .. 2025.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