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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문화 브랜드 리뷰/영화 리뷰

<블라인드>또다른 눈 먼자들의 도시

by feelosophy 2011.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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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무척 중요합니다.

시각은 전체 감각의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 이상일런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후각은 너무도 예민해서 이미 제 기능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더러 뇌속 깊은 부분과 연결되어 있어서 깊은 추억 속 본능까지도 들추어 내어 성가시게 할 뿐이며, 이미 너무 많은 소음이 뒤죽박죽인 도시에서청각은 어느 하나에 집중해야 할 지 몰라 정신 사나울 때가 더 많습니다.
 


주인공 수아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두 가지 기능을 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는 영화의 내용과 형식에 모두 순 작용을 하게 되는데요. 하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주인공이 어떻게 그 좌절을 딛고 일어나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의 장르로 내세운 스릴을 증폭시키기 위해 오히려 시각적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반복을 통한 몰입 강화

두 남동생을 통한 자립.
수아는 장래가 총망되던 예비 경찰이었지만 불운의 사고로 동생을 잃고 눈이 멀었습니다. 3년이 흘러도 동생을 죽게 만든 무력했던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따지고 보면 동현이는 불량 청소년도 아닌 그저 춤이 좋아 친구들과 열심히 춤연습하던 열아홉 또래 아이들의 딱 보통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기섭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음식 배달을 하고 입에서 나오는 말의 반은 욕인 아이입니다. 딱 동현이와 또래 나이의 어른들이 보기에는 반항아이고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 같지만, 나름대로는 책임감있고 강단 있는 아이입니다. 이렇게 두 동생의 위기의 순간을 겪으면서 수아는 동현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겨나가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의 닫힌 마음을 활짝 열게 됩니다.

죽음과 희생의 반복을 통한 관객의 몰입 강화.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동생을 잃고 주인공은 눈이 멀었다는 슬픈 사연, 그렇게 충직하고 사랑스럽던 슬기의 용감한 희생, 범인에게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희생자들, 두 형사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주인공의 주변에서 참기 힘든 죽음이 반복됩니다. 이런 섬뜩한 장면의 반복을 통하여 절정 부분에서 수아와 범인의 대결 장면은 큰 몰입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너무도 간단하게 사람들을 죽인 범인이라면, 눈까지 보이지 않는 주인공을 금방이라도 끝장내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안타까운 심정으로 영화를 주목하게 되는 것이죠.


오히려 시각을 극렬하게 표현, 청각과 촉각은 보너스.

눈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의 느낌을 <블라인드>는 다른 영상으로 관객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이 것을 감독이 얼마나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연출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블라인드>에서는 박쥐나 돌고래가 초음파를 통해 사물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처럼 담배연기나 음파를 통해 암흑 속에서 범인의 형태를 유령이나 좀비처럼 일그러진 형태로 그려냅니다.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거나 주인공의 심정을 표현하는 꽤 영리한 방법이었죠. 범인이 가지고 있는 악랄함과 잔인함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듯.

수아가 만지고 들어서 알게 되는 것들은 오로지 그녀의 대사를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그것들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단서로 작용하게 됩니다. 사실 눈이 보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청각이나 후각이 다른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발달하였으며, 꽤 그럴듯한 추측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영화등을 통해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그 요소가 큰 특징이 되지는 않았지요. 실제로도 후반부에는 그녀의 청각이나 촉각에 대한 의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단지 이 이야기는 그녀의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의 시작과 새로운 눈을 뜨게 된 마침내의 시작 사이의 긴 터널에 대한 것일 뿐입니다.

흥행하기 위한 꼼꼼한 장치들.

동생의 트라우마를 또 다른 동생으로 이겨내기의<블라인드>는 영리한 영상기법을 내세워 이미 그만의 개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흥행을 위해서는 약간의 양념이 필요한 법.

스릴러의 긴장 간간히 유머를 넣을 것.
조연으로 등장한 조형사는 극의 전개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수아의 발 노릇을 하면서, 경상도 사투리, 지치지 않는 행동력은 이 도시 외부인으로서 순박한 캐릭터로 작용합니다. 그는 자칫 어둡고 끔찍해할 만한 영화를 상업영화로서 적절히 균형을 맞춰주는 구실을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맹인견으로 등장한 슬기의 경우도, 수아와 친밀한 한 때를 보내거나 조형사와 마주한 콤비 연기에서 기특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유쾌한 감정을 실어주었죠.

고아, 맹인, 길거리 아이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약간의 공익적 의도.
처음부터 염두해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힘 없는 여자에 맹인이라는 신체적 약점 이외에도 주인공 수아는 고아원 출신입니다. 게다가 함께하는 이들도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지요. 그녀를 믿고 도와준 조형사도 지방에서 올라온 순박한 경찰이었습니다. 비뚤어진 것 같은 아이들이라도 친구사이의 우정은 돈독하고 그들이 그들 나름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친구의 죽음을 잊지 않고 추모공연을 하는 아이들을 통해서요. 또한 맹인들도 그들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경찰로서 꿋꿋하게 웃어 보이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서 말입니다. 부차적이기는 하지만 맹인의 삶을 편리하게 해줄 다양한 용품들을 선보이면서 보통 사람들에게 약간이라도 그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교육(?)요소를 넣어준 셈이죠. 


또 다른 눈 먼자들의 도시

2008년 개봉한 <눈 먼자들의 도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는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서 보이지 않을 때, 주인공 여자만 눈이 보이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사람들이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세상에서도 권력과 욕망이 들뜷어 인간의 깊숙한 추악함까지도 드러나게 되지요. 그 안에서 주인공이 주변을 도와나가면서 인간 본연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과 주변을 일으켜 세우게 됩니다.

한편, <블라인드>는 힘 없는 여자 혼자만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눈 뜬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욱 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젊은 남자들도 떨어져 나갈 판에 눈이 보이지 않는 여린 여자가 포악한 괴물로 변해버린 범인을 무찔러 버립니다. 조금 오버해서 해석해보자면, 이것은 사회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약자들의 편견이나 냉소를 깨부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기력하게 희생에 숨어들지 않고 몸 속 한 점 에너지까지 휘둘러내 버리는 주인공을 통해 그녀가 단순히 흉악한 범인을 무찌른 것만이 아닌 듯합니다. 

전혀 다른 환경과 갈등을 겪는 두 여자지만, 내적 갈등을 이겨나가면서 결국에는 자기와 다른 모든 이보다 강하게 일어선다는 점에서 두 영화를 연결짓고 싶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세상과 다른 나는 소외되고 고통을 겪지만, 마침내는 두발로 굳게 일어설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단지 평범한 누군가가 언제든지 겪을 수도 있는 재앙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를 물어본다면 이런 대답을 해보고 싶지 않을까요?


<블라인드>는 스릴러이고 마케팅에서 내세운 '두 목격자의 엇갈린 진술'도 흥행에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스펙트럼은 꽤 넓어서 뒷 힘을 더욱 발휘하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앞 서 이야기 한 것처럼 강약을 조절한 비슷한 모티브의 반복학습에 의해 관객들이 이야기에 몰입을 유도하고, 맹인이라는 설정을 역설적으로 시각효과로 표현함으로써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으며, 사회 약자를 대변한다는 상징적인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곱씹을만한 명분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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