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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문화 브랜드 리뷰/영화 리뷰

<왓 위민 원트>로맨틱 스쿠루지

by feelosophy 201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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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과 월요일의 그 불편한 경계 즈음에서 반가운 영화를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오랜 친구를 다시 본 기분이었죠. 바로 <왓 위민 원트>

사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또래 아이들은 멜깁슨에 열광했습니다. 남학생, 여학생 불문이었죠. 그는 깊고 푸른 눈과 다부진 몸짓으로 항상 자신감이 넘쳐보였습니다. 아마 그 시절 그의 그런 모습이 우리들에게 매력적인 사람의 표본이라도 되는 것인냥 비춰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죽하면 친구녀석은 자기 영어 이름을 멜이라고 지었을까요. 


영화를 고를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출연 배우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 만큼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의 이미지가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 점에서 <왓 위민 원트>는 멜깁슨이라는 초절정 인기 배우의 수혜작이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지금도 어느 영화 리뷰글에는 영화를 선택한 이유로 독보적인 1위로 출현 배우라고 나와있구요.

물론, 영화에서 배우의 역할은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백분 남짓한 시간 내내 어두 컴컴한 곳에서 그들의 아름답게 연출된 모습을 주목하도록 하니까요. 반면,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은 카메라의 앵글을 머리속에 오랜 기간을 고민하다가 가장 효율적인 앵글로 화면을 만들어 내어도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존재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관객은 감독이 만들어 낸 철저하게 계산된 그 앵글조차도 마치 자신이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영화 속 이야기를 들여다보기 때문이지요. 영화의 앵글 밖은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왓 위민 원트>는 배우 뿐만 아니라 감독과 조금은 동화같은 이야기까지 모두 칭찬해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처음에는 멜깁슨의 능청스러운 마초연기에 푹 빠졌다가도, 그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관객을 젖어들게 하는 것을 느꼈거든요. 여기에는 지금 들어도 구성지고 아름다운 음악과 노래들, 지금의 젊은이들조차 동경해마지 않는 대도시의 시카고 어느 고풍스런 길, 드러내지 않는 고급취향의 옷차림과 소품들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어느것 하나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일거에요. 이렇게 세련되면서 무겁지 않은 로멘틱함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마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재능일겁니다. 이 <왓 위민 원트>뿐만 아니라,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2003)를 본다면 아마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해요.

물론 여기까지라면 <왓 위민 원트>를 가슴 쓸어 내리며 깊게 호흡하게 하는 영화라고 말하지 않을겁니다. <왓 위민 원트>의 가장 큰 매력은 남자 주인공의 매력에 의해 여자들의 섬세한 심리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그것을 어루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여자는 이래요'라고 하지 않고, 전혀 반대인 인물을 내세워 극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여자들의 심리를 관객이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영리한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저도 처음 영화를 본 십년 전에는 몰랐습니다.)

<왓 위민 원트>에는 유명한 장면이 몇 있습니다. 그 중에 와인에 흠뻑 취한 닉이 중절모를 쓰고 정확하게 계산된 동작으로 멋들어지게 춤을 추는 장면이 있죠. 흡사 <러브액추얼리>의 휴 그랜트의 흥에 취한 춤동작 혹은 <취권>의 한 장면 같이 보는 재미에 흥까지 더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능청스레 요가를 하는 장면은 영화의 예고편에도 등장했습니다. 

이 두 장면 모두 즐거움을 표현하는 듯하지만 서로 다른 즐거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모두 웃고 있어도 어두운 공간에서 혼자 비틀거리며 춤을 추는 남자는 세상과 단절되고 독선과 이기로 똘똘뭉친 못된 스쿠루지의 몸짓을 표현한 것이라면, 화사하고 밝은 공간에 많은 여자들과 함께 요가하는 그 남자는 욕심과 위선을 벗고 여자의 내면의 소리에 정말로 귀기울이게 되는 착한 스쿠루지를 나타낸 것 같거든요.  

찾아보면, 이렇게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장치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조금은 유치할 지 모르겠지만, 스쿠루지가 꿈속을 빠져나오게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키작은 동양 할머니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도 그렇고, 그녀가 말없이 인도하는 낯선 곳에서 타이밍 맞춰 번개불에 합선된 불꽃에 휩싸이는 장면같은 것 말입니다. 그 장면은 처음 드라이에 의해 감전되어 죽을 뻔 하면서 신비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순간보다 더 스케일이 크고 화려합니다. 이제 다시 진짜 현실로 돌아오는 장면이지요. 사랑하는 연인에게 딸에게 주변의 존중받아야 할 여자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의식 같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 '뭐야'하지만 고개는 끄덕이게 만드는 그런 장면이었을거에요.

물론 영화에서는 닉에게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달시를 통해 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 많은 댓가를 치뤄야 할 때도 있고, 그녀가 성공을 위해 외롭지만 꽤 잘 달리고 있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지금의 저를 비추는 거울같기도 합니다. 아마 닉만 날뛰는 영화였다면 이렇게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겁니다. 달시에 자신을 대입하고, 스스로 부족함 외로움 그리움 혹은 두려움까지도 공감했기 때문에 그녀를 이해하는 닉에게 더욱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합니다.

치장할 필요 없이 새벽길을 무작정 달리는 것만이 머릿 속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나를 환기시켜주는 탈출구가 된다는 말, 영화 속 광고캠페인 아이디어로 나왔던 여성 대상의 스포츠 광고의 문구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게임이 아니라 단지 스포츠라는... '


나쁜 스쿠루지 영감이 착한 스쿠루지가 되었고 게다가 매력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해피엔딩을 나도 한 번 누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행복해 지는 영화라면 남자들이 보기에 다소 한심해 보일까요?
그래도 뭐 상관은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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