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만큼이나 여자들이 두고두고 하는 이야기가 바로 아이 낳을 때의 고난한 순간들의 기억 덩어리일테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여자들조차도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큰 공포일지도 모른다. 첫 아이를 낳는 순간은 마치 내가 다른 차원으로 잠시 빠져있다가 돌아간 느낌이 드는데, 차라리 그 어벙벙하고 우물쭈물한 내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아픔을 아는 자가 어찌 그 고통을 다시 겪으러 병원에 가겠는가. 

아무리 한국 여자들이 자기 몸, 특히 성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내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 가운데서도 평균 이하였던 듯하다. 여자성기는 빙산의 일각처럼 바깥보다는 안쪽에 대부분 들어있을 뿐더러 자기 성기를 볼 기회가 많지 않다. 작정하고 봐야 볼 수 있는 구조이니까.

<질의 응답> 니나 브로크만, 엘렌 스퇴겐 달 지음/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2019

 

나름 과학과목을 좋아해서 물화생지 안가리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잠깐 학원에서 과학과목을 가르치기까지 했으니 생물시간 특히 사람의 생식에 관한 단원을 가르칠 때면, 남여 성기의 구조와 기능 임신과 출산에 관련한 신비한 일정에 관히 무덤덤한 척 해야했다. 

마침내 임신을 하고나서야 산부인과 병원에 주기적으로 내 몸을, 정확히는 나 아이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진단받았다. 그때마다 지겹게도 나의 질, 자궁, 난소에 대한 여러가지 진단과 시험을 맞아야 했다. 사회 통념상 나는 노산에 속하는 임산부라서 이것저것 더 많은 검사를 해야했는데, 콩알만한 아이가 점점 커져서 내 배가 불러오고 입덧과 먹덧과 소화불량과 불면증 등등의 여러가지 몸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던 시기가 무척이나 우울해질판이었다. 

이것보라니까.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여자들은 아이 낳은 이야기가 구구절절일 수밖에 없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질의 응답>은 북유럽 노르웨이의 두 산부인과 의사가 쓴 여자 성기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을 내놓은 열린책들 정도의 출판사나 되니까 이런 책을 표지도 예쁘고 제목도 묻고 답한다는 의미와 여자 성기를 의미하는 '질'에 소유격 어미를 붙여 보는 센스를 선보였다. 

책에서는 단지 생물시간에 배운 성기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것을 나열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 통념상 잘못 가지고 있는 선입견들에 대한 것들을 하나씩 파헤치는 편이라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쯤 되면 우리보다는 개방적일 줄 알았는데 그 곳 역시 여자들이 자기 성기에 무지하고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읽으니, 역시 생김새와 사고방식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보기 힘드니 알 수 없고 알 수 없으니 숨기게 되고 숨기다보니 잘못된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증명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요즘들어 여자들은 자기 몸을 더 적극적으로 가꾸고 생리, 임신과 출산에 대해 주체적이고 공론화하야 이야기 하는 빈도가 많아졌다. 아이를 낳아본 여자, 나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확실히 임신 출산 전보다는 자유롭다는 걸 느낀다. 이것은 내가 아줌마가 되어서가 아니라 내 몸, 내 성기에 대해 더 자세하고 자주 만나보았기 때문이고 그래서 내 몸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직 어리고 무지한 여자 아이들에게 서로가 또는 이성이 심어주는 그릇된 상식에 휘둘리지 않기를. 자기 몸에 호기심을 가지고 그 호기심을 통해 자기 성찰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멋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아무래도 그 시작은 이 책을 한번 읽고라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비로소 책방지기/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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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소설을 읽었습니다. 마음북maumbook이라는 문화예술책모임 에서 마음을 울린 책으로 지후언니가 추천해주신 책 중의 하나였죠. 이 책은 두껍지도 않고 심각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영화 <아멜리에>와도 닮은 구석이 있는 산뜻하면서도 완전소중하다싶은 구석이 있는 소설이에요.

 

은둔형이었을지도 모르는 젊은 여자의 사랑이야기라는 점에서 남자들은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소개말에도 나온 것처럼 '문학의 거목들로 가득한 숲속'을 신나고 발랄하게 산책하는 기분이 들어 자못 청량하기까지 합니다. 중학생시절 한달을 걸려 읽어냈던 <죄와 벌>의 도스토예프스키가 등장하고 키에르케고르와 안드레지드의 실제 소설의 인용구를 적절하게 활용한 형식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쩌면 독자 스스로 다독을 시험받는 듯하기도 하고 이 얇은 책 한권으로 그 유명한 책의 구절구절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같습니다.

 

 

 

 

제목이 그렇다보니 저도 책 중간중간에 밑줄을 그어놓고 싶은 충동을 마구 느꼈습니다. 실용서적이나 정리가 필요할 것 같은 책에는 큰 마음 먹고 밑줄을 긋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기도 했지만, 여전히 감성의 한가닥이 맡물려 제가 이 책의 부분을 더럽히고 싶지 않은 생각이 더 커서 그 충동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읽어 내려가면서 흐믓한 미소를 지었던 몇몇 구절을 떠올려보자면

 

'내 삶이 탐탁치 않기로서니, 그게 무슨 상관이랴, 서점에 가면 다른 삶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지 않은가.'

 

... 그리고 책을 읽는 중에 나타나게 될 너무 어려운 순간, 혐오감이 이는 순간,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비해, 비스킷 한 갑을 갖다 놓았다.

 

이제 겨우 <H>자까지밖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 <H>자를 가지고 무얼 하든 관심이 없었다. <불확실하다Hypothetique>는 말에 붙은 H든, <진공 청소기aspirateur>에 H를 붙여 Haspirateur를 만들든... ...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묘하게도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나는 <사랑에 빠지다amoureuse>라는 말을 숨을 들이쉬며 hamoureuse라고 발음해 보았다.

 

의기양양하게 고전을 헤집고 다니던 소설은 이내 여자 주인공으로 돌아와 그녀의 두통약, 소화제와 비스킷으로 독자의 감정을 다스리다가 결국에는 다른 남자와 해피엔딩이라는 김빠지는 듯 하면서도 끝내 미지의 남자를 숨겨놓는 여운을 심어 책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어요.

 

클로드가 비록 콩스탕스가 사랑한 밑줄 긋는 남자는 아니었어도, 그들은 그 밑줄 긋는 남자의 밑줄에 의해 연결되었어요. 세심하지 않고 다소 유치한 말투를 쓰더라도 내 몸을 덥혀주고 마음을 쓰다듬어 자신이 위태로울 수 있는 일을 헌신적으로 달려드는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을 여자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아주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만족감이 커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책이 나온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책 속의 주인공은 여전히 20대 중반의 풋풋하고 아름다운 이들이겠지만, 그 시대의 파리의 묵직한 향취를 간직한 채 도서관 어디엔가 자신만의 밑줄을 감춘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요.

 

 

덧, 중간 중간 오타가 보이는데 열린책들에서 다음 쇄에는 수정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곳마다 밑줄을 그어 담당자분에게 연락을 드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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