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헤테로토피아, 현실화된 유토피아 공간을 꿈꾸다

자그마한 공간을 운영하면서도 쌈지길이나 롯데월드, 사람들로 북적이는 축제공간을 떠올려보곤 했습니다. 손님들이 들어와서 공간에 머무는 동안의 경험을 어떻게 꾸릴것인지, 그 중간중간 어떤 장치를 두는 것이 좋을 지를 고민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손님들이 공간 안을 거닐며 몇걸음 움직이고 멈추고 또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동행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공간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기쁨일것입니다.

'공간'과 '장소'를 테마로 한 여러 책을 읽고 있습니다. 꽤 공들여 읽어도 그 안에서 나의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어갈 실마리를 찾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읽은 <헤테로토피아>는 그나마 분량이 적어서 어찌어찌 읽어졌습니다.

푸코가 쓴 에세이로 인터뷰나 라디오 연설 등의 글을 모아 만든 책으로 제목의 '헤테로토피아'는 비현실 공간인 유토피아와 상대되는 개념입니다. 사회 안에 존재하면서도 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그래서 온갖 장소들에 이의제기를 하고 전도시키고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 바로 헤테로토피아입니다.

 

혹은 반공간(conter-espaces)로도 불리는 이 공간은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들에 맞서서 그것들을 지우고 중화시키고 혹은 정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장소입니다. 푸코는 정원의 깊숙한 곳, 다락방, 인디언 텐트 혹은 목요일 오후 부모의 커다란 침대를 예로 듭니다.

각 문화권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습이 있고 그 생활양식에 따라 각기 다른 공간이 마련되면서 당연히 이러한 반공간들은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설령 같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사람에 따라, 또는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는 특히 어린 시절 공유한 꿈같은 시절의 상상과 호기심이 보장되던 그런 공간의 향수가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가장 오래된 헤테로토피아로 예로들었던 정원, 그것을 본떠 만들었다는 페르시아의 양탄자는 세상의 중심이 곳 '이곳'이며, 세상을 종횡무진 누비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이와 같이 다수가 인정하고마는 그런 헤테로토피아가 존재합니다. 그것을 조금 분류해놓은 부분이 관심이 갔습니다.

우선, 모든 시간, 모든 시대, 모든 형태와 모든 취향을 하나의 장소에 가두어놓으려는 의지, 마치 이 공간 자체는 확실히 시간 바깥에 있을 수 있다는 듯 모든 시간의 공간을 구축하려는 발상(p.10)의 박물관과 도서관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시간을 정지시키고 특권화된 공간에 무시간을 누적하여 보편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을 숙명으로 합니다. 현시대의 특징적 공간이라 일컫는 이 박물관과 도서관은 렐프의 무장소와 비교하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더 고민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다른 헤테로토피아는 바로 한시적인 헤테로토피아입니다. 축제나 공연장, 시장이나 마을 변두리의 공터, 휴양지를 예로 듭니다. 이 헤테로토피아는 시간을 지우고 벌거숭이 원죄의 순수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한 연구자는 우리나라 제주의 한달살기 등과 같은 제주 이주의 삶을 이 헤테로토피아와 연결하여 연구하기도 했더군요.

그리고 통과, 변형, 갱생의 노고와 관련된 헤테로토피아도 있습니다. 기숙학교나 병영, 감옥등이 그러한 예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헤테로토피아에 자유롭게 들어가지는 않고 특정한 의례나 의식이 필요하기도 한 공간입니다.

세계에 닫혀있지 않고 열려있는 헤테로토피아도 있습니다. 누구라도 거기 들어갈 수 있지만, 사실 일단 들어가고 나면 그것은 환상일 뿐, 어디에도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감하게 된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공간입니다. 열려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찌감치 입문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매음굴과 같은 헤테로토피아도 언급됩니다.

이러한 헤테로토피아의 공통적 특성은 현실 공간의 이의제기로 정리되는데, 그 방식은 헤테로토피아 외의 현실공간이 환상이라고 고발하는 환상을 만들어내거나 반대로 사회가 무질서하고 정리되어 잇지 않고 뒤죽박죽이라고 보일만큼 주도면밀하고 정돈된 또다른 현실 공간을 실제로 만들어 냄으로써 가능하다고 합니다.(p.24)

또 다른 글에서 우리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눈을 뜨면서부터 나는 더이상 이 장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p.28)라는 말로 우리의 몸에 대한 장소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내몸, 이 가차없는 장소. 만일 내가 그림자라든지 마침내 더이상 제대로 쳐다보지 않게 된, 삶에서 흐려진 일상의 갖가지 사물들, 그러니까 매일 저녁 창문으로 우툴두툴 보이는 이 지붕이나 굴뚝 들과 더불어 살듯, 내가 내 몸과 다행스럽게도 그런 오랜 친숙함 속에 산다면 어떨까?(p.28) 우리의 벗어날 수 없는 몸과 관련하여 이집트의 미라는 부정되고 미화된 몸의 유토피아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아니 정말로, 내가 불투명한 동시에 투명하고, 가시적인 동시에 비가시적잉고, 생명인 동시에 사물이 되는 데는 마술도, 요정의 나라도, 영혼도, 죽음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유토피아이기 위해서는 내가 몸이기만 하면 된다. 나로 하여금 내 몸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던 모든 유토피아의 모델, 그 적ㅇ용의 원점, 그 기원의 장소는 바로 내몸 자체였다.'(p.33) 내 몸에서 유토피아가 나왔고 유토피아가 몸을 배반했다는 선언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회적이며 현존하며 그것 안에서 환상을 이야기하는 유토피아가 나왔다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더 가치있게 들리니까요.

거울에 관한 부분도 가상의 공간과 관련한 연구와 연결하여 기억해두려 합니다. '말하자면 내개로 드리워진 이 시선에서부터, 거울의 반대편에 속하는 이 가상공간의 안쪽에서부터 나는 나에게로 돌아오고, 눈을 나 자신에게 다시 옮기기 시작하며, 대가 있는 에서 자신을 다시 구성하기 시작한다. 거울은 헤테로토피아처럼 작동한다. 그것이 내가 거울 안의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절대적으로 현실적인 동시에 절대적ㅇ으로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기에 그렇다. 그 자리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며, 그것이 지작되려면 [거울]저편에 있는 가상의 지점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저메서 비현실적이다. '(p.48)

뒤이어 푸코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 신화적인 동시에 현실적으로 일종의 이의제기를 하는 상이한 공간들을 연구, 분석, 묘사하는 기술방식을 앞서 언급한 내용을 여섯가지로 다시 정리해두었습니다.

'번째 원리는 계의 문화에는 헤테로토피아를 구축하고 있는데 신성시되는 위기의 헤테로토피아와 일탈의 헤테로토피아로 구분된다. ... 두번째 원리는 이전부터 존재한 헤테로토피아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시킬 수 있다. ... 세번째 원리는 양립불가한 복수의 배치를 한 장소에 구현할 수 있다. ... 네번째 원래는 시간의 분할과 연결되는데 이때 대칭적으로 헤테로크로니아의 개념을 들어볼 수 있다. 이 헤테로토피아와 헤테로크로니아는 상대적으로 복잡한 방식으로 조직되고 배열된다. ... 다섯번째 원리는 그것을 고립시키거나 침투할 수 있는 열림과 닫힘의 체계를 전제하며  ... 마지막 원리는 환상과 질서의 두가지 축에서 기능을 가진다는 것이다.'

작은 동네 서점이나 골목의 작은 가게들로부터 문득 일상 외에 새로운 경험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에서 맞는 환상적이거나 극도로 계산된 치밀한 연출에 의해, 때로는 시간이 축적되거나 삭제되버리는 마법같은 공간을 꿈꾸는 기획자라면 우리 '지금 여기'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떤 모습인가를 상상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비로소 문화기획자 장효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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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카라, 정돈되지 않았지만 정갈한 공간

공간에 들어섰을 때, 드라마 <도깨비>에서 처럼 문을 열면 새로운 곳으로 뚝,하고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길을 돌아 들어 산울림 소극장 1층에 있는데 간판이나 입구가 요란스럽지 않아 이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어려울만하다.

 

가운데에는 차와 음료,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을 둘러싼 테이블에 손님들이 나란히 앉아있고 나머지 공간에 키 낮은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있다. 카페라고 하기에는 개별 공간이 부족해서 편안하게 장시간 앉아있기는 뭣하고, 그렇다고 음식점이라고 하기에는 자유로운 분위기라서 마치 도서관 매점처럼 정숙한 수다가 어울린다.

 

유기농을 몸이 알아챌만큼 예민한 편은 아니라서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고 하면 감사히 먹기는 해도 찾아먹지는 않는데, 이 곳은 유기농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곳이라고 한다. 애매한 시간이라 식사는 못했지만, 대접과 머그의 중간으로 보이는 그릇에 따끈하게 담아 내온 짜이가 그 말을 증명해주었다. 담백하고 담백하였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케익은 두부케익이었는데 치즈케익만큼 부드럽고 담백하고 적당히 단맛이 우러나와 내 입에는 좋았다.

 

보기좋으라고 놔둔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직접 담근 차들이 담겨있는 유리통들이 한켠 선반에 올려져있고, 여기 저기 수공예품이나 유기농 재료, 이런저런 물건들이 이 곳만의 규칙에 의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꼭 오랜만에 시골 집에 내려가서 엄마 주방에 들어선 기분이라고 해야 할 지, 뭔가 손때가 잔뜩 묻어서 치워도 티하나 안나는데 또 보면 먼지하나 없는 그런 정갈한 맛이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이 허하고 뭔가 내게 힘을 좀 주고 싶을 때 들러서 저 나름의 위치에서 당당한 물건들과 섞여 나도 내 나름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 적당히 정돈되지 않은, 그래도 정갈한 공간을 알게 되어 나름 기쁜 마음이 들었다.

 

 

문화 공간 연구소 비로소, 장효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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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대나갈일있어서 잘보고갑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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