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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과 민주주의> 반쪽짜리 민주주의가 싫다면!

by feelosophy 201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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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는 고등학교 때 이과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과학과 수학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자연스럽게 공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자연을 관찰하여 도출해 낸 법칙들로 이루어지는 것을 과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과학은 정말로 객관적이고 언제나 불변하며 늘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학기술과 민주주의>라는 책은 그 제목부터 왠지 흥미롭게 여겨졌습니다. 물론 제가 기술지상주의를 옹호해 온 것은 아니었으나, 과학이나 기술이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과 민주주의>는 과학기술을 우리 사회를 보는 눈으로 그대로 바라봅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이념을 잘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이제 과학기술과 관련한 정책에서도 민주주의가 실천되어야 한다고 말하죠.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동안 첨단 기술의 연구를 위한 국가적 지원 정책을 위하여 대부분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또한 그에 대해 대부분의 시민들은 스스로의 무지를 이유로 삼으며 그 정책에 대해 입을 열기가 힘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경제발전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20세기 중반, 우리나라는 성장위주의 기술에 집중하여 발전 시켜왔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개인을 희생하고 전체를 위한 것을 미덕으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책에서 사례로 들었던 것처럼, 비슷한 사안에 대하여 미국과 영국, 독일의 입장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그 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죠.

같은 사안에 대해 이렇게 전혀 다른 결과를 이끌어 낸 각 나라의 정책을 본다면 과학/기술이라는 불변의 진리 같은 것에 대해서도 대중의 이해와 선택을 통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에 수긍하게 됩니다.
 

“통상적으로 과학기술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전문가주의’와 ‘민주주의’가 가장 격렬하게 맞서는 장이 되어왔다. 전문가주의 입론은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과학기술 예외주의를 강조한 ... 그러나 자신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과학기술에 대해 시민들이 민주적 통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정치적, 사회적 민주화가 진전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반쪽짜리 민주주의데 다름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실제로 지금까지 과학 기술의 발달에 수혜를 입은 만큼 과학과 기술의 위험성에 대해 여러차례 경고를 받아왔습니다. 지난 해 일본의 지진에 의한 원자로 방사선 유출의 문제나 영화<에린브로코비치>에서처럼 대기업의 몰염치한 환경파괴에 의한 시민들의 고통을 모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사회는 이미 광우병과 관련한 경각심에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거부하는 ‘촛불시위’를 경험하였죠.

책에서는 2000년대 초반 국가적으로 지원하였던 산업 BT, IT, CT, NT에 대한 내용들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그와 비슷한 사안의 해외 사례를 비교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의 기술에 대한 지금까지의 상황을 리뷰하면서 마치 기술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발전시킬수록 경제적 효율적 측면에서 많은 이득을 받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미처 다 알아내지 못한 부작용에 대한 조심성도 필요하다는 지적합니다.

실제로 특정 대기업을 위한 기술에 대학 기술연구가 집중이 되거나 ‘황우석 사태’로 회자되는 바이오 기술과 관련하여 스타과학자 띠우기 식의 국가적 여론 몰이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고, 핵폐기물 문제와 관련하여 의사 결정이 진행된 사례를 우리나라와 독일을 비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균형있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할 수 없게 만들고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술력이 아닌 성과지향형의 성급함을 드러낸 것이었죠. 이는 결국 미봉책과 같이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지속적인 발전에는 외발이 신세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때로는 시민들의 안전에 위험을 은폐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으로 저자는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참여적 위험 거버넌스의 논리와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죠. 즉, 기술과 관련한 정책과 관련하여 기존 기술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참여에 의한 시민배심원회의와 같은 제도를 이야기 합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저는 처음 이야기 한 ‘자연의 이치’라는 과학이 ‘인간이 바라 본 자연의 이치’로 탈바꿈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지구의 한 구성원으로서 과학과 기술을 연구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하고 그들의 지적탐구에 대한 존경심은 변함이 없지만, 대부분의 기술들이 주로 우리 인간만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정신으로 연구되어 오 것이 사실인 듯 합니다. 또한 그러하다면, 인간들을 해칠 수 있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위험성을 모든 사람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사회학자가 쓴 책이기 때문에 과학 기술과 관련한 내용을 다소 세세하게 적어 놓아서 평소 과학기사에 관심이 많았던 독자라면 그 부분은 쉽게 넘겨 읽을만 합니다. 반대로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은 이러한 친절한 설명들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많이 다루지는 않았지만 IT와 관련하여서도 최근 SNS를 통한 선거활동과 관련한 판결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술과 사회/문화적인 트렌드는 다르지 않은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기술과 사회는 다른 것이 아니며 또한 종속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서로를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기술의 지원과 정책입안과 관련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한 노력에는 좀 더 세세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기술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는만큼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비전문가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익혀야 할 것입니다.(대개 공대생들은 다소 괴짜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자신의 생명과 행복을 위하여 다소 복잡한 기술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선동하는 누군가의 의견을 반복하는 앵무새가 되는 것은 그들의 사리사욕을 채워주는 도구로 스스로를 전락시키는 일일테니까요.

다행히 최근 교육과정에는 고등학교 1학년의 과학책에는 기존 18세기 과학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최신 과학과 기술에 대한 소개가 들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기술에 대한 이해와 윤리적 고민을 함께 하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진행되어야, 기술의 위험성을 은폐하고 발전에 초점을 맞춘 입안을 하지 않도록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과학기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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