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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행복하게 살기/여행& 맛집

터키에 걸어가다 10km

by feelosophy 2013.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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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터키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터키는 이야기가 많은 나라입니다. 중세시대의 신화와도 같은 수많은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이집트와 뗄레야 뗄 수 없으며,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개성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곳이죠. 그래서 유럽의 역사에도 중국의 역사에도 이집트의 역사에도 종종 등장하는 나라가 터키의 선조들이랍니다. 워낙 너른 땅을 영토로 하였기에 독특한 자연환경에 그들의 역사를 입힌 희귀한 구조물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천혜의 자연에 그들의 맛깔나는 음식이 더해져 더 없는 추억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것은 반대로 그들 고유의 개성을 이야기하기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변국인 그리스나 이태리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 처럼 소위 조상 잘 만난 덕을 보는 나라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죠. 터키는 앞서 이야기 한 역사/지리적 이유로 매력적인 관광국이 되어 국민의 90퍼센트가량이 관광산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터키인들이 자신은 없고 조상의 찬란한 문화만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다고 합니다. 특히나 정치 사회적으로 조금 들여다보면 1923년 터키 공화국은 이전의 오스만제국과는 많은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우선 왕정을 폐지하고 술탄가문을 추방하고 세속주의, 공화주의, 국민주의, 개혁주의, 국가주의 등을 기본으로 하는 근대 국가를 만들고 이슬람문화에서 근대 유럽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이 중심에는 바로 터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타튀르크가 있습니다. '아타튀르크'는 터키어로 터키의 아버지라는 말이면서 터키 공화국 제 1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성(性)입니다.

 

아타튀르크는 군인으로 청년튀르크당을 이끌고 세계1차 대전에서 높은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특유의 추진력으로 개혁을 단행하여 그간 이슬람을 국교로 하던 것을 분리시키는 세속주의를 강경하게 선포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이들을 처벌하므로써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여성의 교육과 선거권을 주고 문자를 널리 알려 문맹률을 줄이는 등 터키인의 융합과 근대화에 큰 노력을 기울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은 11월 10일 오전 9시 5분에는 전국적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사가 아직도 열리고 있으며 그를 기념하는 영묘와 기념관은 앙카라 시민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지금도 터키인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폐에도 도시의 가장 큰 길의 이름에서도 그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해요. 

 

하지만, 그의 세속주의는 아직도 정치적인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국민이 전체 터키인의 90%가 넘는데 종교자유라는 명목으로 대학에 히잡을 쓰고 들어가지 못하는 등 공공기관에서 이슬람 문화와 관련한 의복 등을 금지하는 것은 그들에게 또다른 종교자유를 무시받는 처사라고 분개하는 것이죠. 실제로 이슬람친화적인 당이 집권하는 시기에는 터키에 모스크가 많이 지어지고 이슬람교 관려 사업이 많이 진행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아직도 이 부분은 예민한 사안이라는 군요.

 

 

 

어쨌거나, 세계의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서구열강의 지배하에 들어가서 많은 고초를 겪을 때, 비록 터키가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어 많은 수모와 영토의 손해를 감수했다고 하더라도 자주국가로서 든든히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역사/지리적으로 장점을 잘 파악하고 용감히 움직인 청년들과 그들을 믿은 국민, 그리고 그를 잘 이끌어 낸 리더 아타튀르크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칭송을 받기는 힘들겠지만, 그의 가치관과 명분이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것이고 특히 약한 이들을 보살피는 것이라면 분명 이는 존경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터키에 가면 근대화에 고향을 벗어난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구별짓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다는 성 가운데 아타튀르크를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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