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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문화 브랜드 리뷰/영화 리뷰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뭉근한 삶의 의미에 대하여

by feelosophy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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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아니 자주 그런다. 쓸데 없이 시간을 흘려버리기말이다. 핸드폰을 쥐고 몇시간이고 쓸데 없는 이미지, 영상을 오가면서 반복반복반복 그 결과 만들어낸 정보도 지식도 없는 가운데 그저 시간을 보내는 어떤 행위 자체를 위한 집중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넷플릭스 영화는 킬링타임용, 양산형 코메디 로맨스 같은 한번 보고 말 영화들이 올라오고 그걸 또 사람들은 부담없이 본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와 캐릭터를 넣어 만든 영화는 대박은 아니어도 기본은 하기 때문인지 특히나 크리스마스때가 되면 매력적인 남여가 등장하는 동화같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보고 듣는데 큰 임팩트가 없는 잔잔한 영화를 찾을 때가 있지 않은가. 문득 내가 지금 뭘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때, 대부분은 사표를 던지거나 여행을 떠나는데, 콘텐츠 소비에 익숙한 사람들이 그럴 때 하는 것이 바로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그런 영화를 만나는 것이다. 

그런 카테고리에 들어갈만한 영화가 바로  <앙: 단팥 인생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나열만으로도 그 관계가 쉽게 예상이 된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무드가 잘 묻어있으면서도 대중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좁은 도라야끼 가게를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다. 

단팥이 들어간 빵류는 빵의 식감만큼이나 단팥 앙꼬의 식감과 단 정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단팥앙꼬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단 알맹이가 튼실한 팥이 좋은 볕을 만나 잘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기본 전제다. 그다음부터 단팥 앙꼬를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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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나병에 걸린 도쿠에 할머니의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단팥 앙꼬로부터 시작된다. 나병환자로 격리되어 시설에서 앙꼬를 만들며 생활하던 도쿠에는 어린시절 오빠의 손에 이끌려 시설에 맡겨졌고, 그 시절 사회와 격리되어 결혼도, 사회생활도 일체 할 수 없이 세월이 흘러 일흔이 넘었다. 벚꽃이 흐드러지던 봄날 무작정 발길을 따라 거닐던 도쿠에는 작은 도라야끼 가게를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지원하지만 거절받는다. 

도라야끼 가게 주인인 센타로는 단것을 싫어한다. 빵은 그런대로 만들지만 도무지 앙꼬를 만들 수 없어 시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손님들도 간혹 찾아오는 학생들 정도. 삶이 무료하고 활력이 없으며 현재를 또렷하게 살아가지 못한다. 그러다 아르바이트를 지원한 도쿠에가 맛보라며 전해준 앙꼬를 맛보고는 마치 계시를 받은 듯 모험을 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부재로 제대로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중학생 소녀인 와카나는 늘 혼자 다닌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학교 선배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 외에는 이 어린 아이의 미래를 그려볼 어느 것도 없는 상황이 애처롭다. 

이렇게 세 명은 좁다란 도라야끼 가게에서 만나고 서로간의 느슨한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서서히 의지하게 된다. 어쩌면 등장인물의 성별이나 나이를 통해 짐작하기 쉽지만, 도쿠에는 센타로의 엄마처럼 센타로가 잊어버린 시간 동안 세상을 알려주는 조어자로 등장하고 센타로는 잃어버린 시간동안 놓친것을 만회해보려는 에너지를 점차 찾아나가는 우리 자신을 대표한다. 한편 와카나는 어쩌면 도쿠에의 그 어린 시절의 소녀를 의미할 수도 있고, 센타로가 책임감있는 어른으로 다시 살도록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대상이면서 엄마의 부재를 채워주는 두 어른들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 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도쿠에가 센타로에게 삶을 알려주는 듯이, 앙꼬를 만드는 법을 전수하는 장면이다. 잘 영근 팥들 사이 불순물과 쭉정이는 골라내고 알맹이들을 보살피듯 씻어내고 삶고 지켜보며 불조절을 하는 과정에서 팥에게 말을 걸고 귀기울이는 장면말이다. 그런 지루할 것 같은 시간을 불과 물과 팥의 소리에 집중하며 치열하게 앙꼬를 만드는 과정은 얼핏 졸릴 수 있지만 오히려 가장 숨이 벅찬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일본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기찻길, 벚꽃, 도심의 무심한 풍경과 자연의 소리가 이 세 인물의 사이를 오가며 손때묻은 도쿠에의 유품과 자유를 찾아 떠난 와카나의 카나리아 그리고 마침내 자기 미래를 그리며 힘차게 도라야끼를 노점에서 시작하게 된 센타로를 통해 해피엔딩을 만들어낸다. 

조용하게, 차한잔 다이어리를 쓰면서 틀어놓고 보기 좋을만한 영화로 추천한다. 

 

비로소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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