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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문화 브랜드 리뷰/영화 리뷰

길복순,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모성애를 압도하다.

by feelosophy 2023.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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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봤다. 보자마자 스친 생각은 굳이 모성애였을까라는 것이다. <레옹>의 킬러와 소녀의 미묘한 관계가 연상되는 살벌한 직업과 인간의 감정 간의 미묘한 이질감이 사람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또 주인공 자신의 서사가 깔려 있는것이 전체 이야기에 몰입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엄마이자 킬러라는 생명을 주고 뺏는 상반된 이미지는 충분히 구미가 당길만 하다.

그래도 그런 설정을 활용하되 너무 딸의 서사에 할애를 많이 해서 극중 몰입이 조금은 감소한 듯 하다. 사춘기 딸을 키우는 것은 죽이고 사는 사회생활보다 더 고되다는 것을 보이는 장치로 사용하는 정도의 비중으로 활용하고 오히려 이연이 연기한 루키 김영지의 분량이 좀 더 많았다면 영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좀 더 명확해지지 않았을까 한다. 극의 시작에서 공정을 이야기하는 길복순이 굳이 쉽게 죽일수도 있는 오다 신이치로를 깨워서 대결을 하게 된다거나, 딸의 공정을 이야기한 장면에 나온 비정한 국회의원의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서 규칙을 어기게 된다거나 하는 등의 에이스의 면모를 흔드는 결정적인 역할이라는 점에서 이견은 없으나 딸의 학교 서사가 굳이 필요했었나의 의견이다. 

김영지는 길복순의 어린시절을 많이 닮았으면서도 천연덕스럽지 않았다는 점에서 달랐고 그래서 앞으로 그의 성장담이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배트맨과 로빈, 맨인블랙의 패기넘치는 신참은 아니라도 그녀가 충분히 이야기 속에서 더 빛날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극 중 길복순의 끝장내기 대결이 그녀에 의해 촉발된 것이기는 하기에 그 비중이 결코 작다고는 할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킬러 그룹과 그 관계자들 간의 서사에 대한 관심이 커서 넷플릭스는 이 시나리오를 보고 드라마를 제안하였다고 한다. 까메오로 초입에 등장한 황정민 뿐만 아니라 구교환, 김성오 등도 에피소드를 묵직하게 끌어낼 수 있는 배우들이라서 더욱 그 개개인의 서사가 궁금해졌다. 각 중소규모 업체들의 일처리 방식이나 일이 들어오고 완결되는 프로세스 등에 대한 구체적인 룰에 대한 서사도 이야기를 뽑기 충분해 보였다.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과 구성도 좋았고 인물간 관계에 따라 공간의 연출이 색다른 점도 볼만한 점이다. 길복순과 재영의 공간인 스윗홈은 그럴싸한 온실을 갖춘 채광이 좋은 너른 집이다. 길복순이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찾은 서술집은 동종업계 사람들이 모여 영웅담을 나누는 자리로 수많은 조리기구가 바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살벌한 곳이면서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노포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업계 1위 MK엔터는 옛 서울역사 건물을 활용하였는데 루프탑의 부채꼴 창을 배경으로 널찍하게 빠진 엔틱한 사장실은 80-90년대 뉴욕 어디에 있었을 것만 같이 생겼다. 그리고 길복순과 차민규가 각각 맡은 A급 작품이 벌어지는 공간은 조용한 가운데 완전범죄를 조작하는 듯이 CSI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 현장을 닮았거나, 첩보영화 혹은 서부시대 영화처럼 극단의 한바탕 패싸움, 총싸움과 난도질로 대비가 된다. 한편, 한희성의 작품공간과 거처는 짜치고 찌질한 늪과 같은 공간이었다. 

전도연의 <하녀>가 생각나는 복장과 전혀 다른 태도, 나는 길복순의 쫙 빼입은 정장보다 이 복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카메라 연출도 매니아층이 아니라면 신선했을 정도다. 피비릿내 나고 잔혹하기만하는 결투장면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음지에서 은폐된 채로 이루어지는 이들의 작업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이, 황정민과의 본격적인 대결에서는 기차가 지나는 찰나찰나의 모습이 마치 무성영화처럼 분절적으로 필터링되거나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어 난투장이 된 공간에서는 복수로 일어나는 개싸움을 빙글빙글 전환하며 주고 받으며 허술하거나 황당하게 당하기를 반복하는 형식으로 B급 유머를 선사하기도 하였다. 

길복순이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자기 회사로 출근하는 장면에서는 길복순의 오프로드 벤츠에서 아이가 내린 쪽 창 바깥에서 정면 창, 이어서 길복순이 앉은 쪽의 창으로 패닝하면서 같은 길복순을 바라보는 관점을 180도 바꾸어 전환하는 것, 상대방과의 대결을 복기하여 약점을 찾아내기 위한 반복재현되는 장면이 중첩되어 재생되는 것 등이 영화적 허구의 연출방식으로 비주얼 스토리텔링의 흥미를 돋운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포스터1,2,3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1편이다. 길복순이 영화에서 사용한 무기들을 나열하고 그 무기들이 공격하는 방향으로 뚜벅뚜벅 여유넘치게 걸어가는 모습이다. 

 

 길복순의 모순적인 상황이라는 점이 매력적이기는 하나, 그녀가 킬러가 본능이 된 첫 단추가 비정한 아버지를 직접 죽이면서라는 것에서 모성본능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과 평범한 남자로 한 여자를 품은 순정남이었다는 차민규의 결말은 다소 황당했다. 하지만 제목에서 밝혀둔 대로, 한국영화에서 찾기 힘들지만 익히 학습된 외국의 레퍼런스 연출 스타일의 적절한 조합에서 비주얼로 읽히는 이야기는 기억할만하다고 본다. 

 혹시 <길복순>의 매력이 인기를 끌어들여서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내 마음에 드는 캐릭터들이 대부분 죽어버리는 바람에 본편의 프리퀄로 제작되기를 바라는 바다.  MK엔터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로 차민규가 길복순의 아버지를 죽이게 된 이유부터 풀어내는 식으로 말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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