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지 좀 지났지만 리뷰로 남겨볼만 한 콘텐츠는 종종 리뷰를 써 볼 생각이다. 캐릭터가 살아있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은 비록 시간이 지난 후 보더라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번에는 <살인자O난감>이다. 주인공은 이탕이라는 대학생이고, 주인공과 대립각을 세우는 캐릭터는 장난감이라는 형사가 등장한다. 원래 동명의 웹툰을 실사화 한 드라마다. 독특한 이름처럼 원작은 4컷만화같은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시니컬한 연쇄 살인 이야기를 풀어내어 그당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이번 리뷰는 탕이나 난감이 아닌 송촌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리뷰를 작성해보았다.
1. 정의의 이름으로 태어난 괴물, 송촌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은 정의와 우연, 그리고 윤리의 경계를 탐색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이탕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진정한 서사의 무게 중심은 송촌에게 있다. 송촌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그는 정의가 폭력으로 타락하는 순간을 형상화한 존재이며, 이탕이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윤리적 경계선이다.
송촌은 사회가 무너진 자리에 등장한 또 다른 질서의 창조자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심판자로 규정하며 “세상의 악은 누군가가 직접 제거해야 한다”는 확신으로 움직인다. 법과 제도가 부패했다면, 정의는 개인이 집행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곧 오만한 확신의 폭력화로 이어진다. 이탕이 ‘우연히’ 나쁜 사람을 죽였다면, 송촌은 ‘의도적으로’ 나쁜 사람을 찾아내 죽인다. 둘의 차이는 도덕적 거리감의 차이이며, 그 대비 속에서 시청자는 정의의 불안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처음엔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 전체를 경멸하는 냉소적 신의 시선으로 변한다. 송촌이 휘두르는 폭력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라 지배의 쾌감이며, 그는 정의를 신격화한 인간으로 남는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나와 다르다는 확신이 있느냐고.

2. 이희준이 만들어낸 송촌의 얼굴
송촌을 연기한 배우 이희준은 이 캐릭터를 통해 ‘괴물’이라는 단어를 인간적으로 완성시켰다. 그는 단순한 범죄자나 광인을 연기하지 않는다. 이희준의 송촌은 장년층 남성의 권위와 고집, 세대적 꼰대스러움이 사실적으로 묘하게 섞인 인물이다. 폭력을 행사할 때에도 분노나 충동이 아니라, 오랜 확신의 결과처럼 차분하다. 세상에 실망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피로와 냉정, 그리고 오래된 신념이 그의 얼굴과 몸짓에 공존한다.
송촌이 과거 형사였다는 설정은 그에게 더 깊은 비극적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는 한때 법의 편에 서서 정의로운 경찰이 되고자 했었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경찰이 된 후에도 그의 삶을 따라다녔지만 정의로운 형사가 되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신념을 짓밟은 것은 다름 아닌 비리 형사, 난감의 아버지였다. 법을 수호해야 할 자가 부정을 일삼는 모습을 목격하며 송촌은 경찰이라는 공적 정의실현에 환멸을 느낀다. 가장 정의로워야 할 집단이 가장 불의하다는 실망, 힘없는 피해자들을 대하는 가해자들의 뻔뻔함에 대한 혐오, 그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살인자의 아들’로 낙인찍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그를 각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희준은 이러한 내면의 균열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그는 정의의 편에 서 있었지만, 정의에 배신당한 남자를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그의 송촌은 ‘한때 정의의 편이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정의가 된 남자’의 비극을 체화한 존재다. 웃음과 분노, 피로와 확신이 뒤섞인 표정 하나로 송촌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 미묘한 얼굴은 송촌을 단순한 악인이 아닌, 정의와 폭력 사이에서 타락한 인간으로 만든다. 조금은 이희준의 송촌은 폭력적이지만 동시에 인간적이며, 냉정하면서도 슬프기도 하다. 그의 연기는 송촌의 잔혹함 속에서도 인간의 피로와 무력감을 드러내며, 우리가 두려워하면서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가장 현실적인 악의 얼굴을 완성시켰는지도 모른다.
3. 경계를 넘어선 인간, 송촌의 의미
〈살인자ㅇ난감〉은 이탕, 형사 난감, 노빈, 그리고 송촌을 통해 정의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이탕은 우발성과 운으로 움직이는 인물이고, 장난감은 제도적 정의를 지키려 애쓴다. 노빈은 정보와 기술을 통해 정의를 설계하지만, 송촌은 그 모든 질서를 무너뜨린다. 이탕이 본능으로 정의를 따른다면 송촌은 욕망으로 정의를 이루려 든다. 그는 이탕의 우발성이 닿지 못하는 끝에서 기다리는 윤리의 붕괴된 미래다.
극의 후반부에서 송촌은 이야기의 방향을 바꾼다. 그는 이탕의 살인을 개인적인 죄에서 사회적 문제로 확장시키는 매개가 된다. 공권력의 대표인 형사 난감이 송촌의 존재를 통해 법의 한계를 목격하면서, 결국 이탕의 체포를 유예하게 된다. 송촌의 등장은 난감으로 하여금 ‘법’이 아닌 ‘사람’을 바라보게 만든다. 또한 그는 노빈이 추구하던 기술적 정의와 시스템화된 복수의 위험성을 현실로 보여주는 화신이기도 했다. 송촌은 노빈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자, 사적 정의구현이 얼마나 쉽게 폭력으로 변질되는지를 증명하는 실체다.
결국 송촌은 이탕에게 하나의 오답노트가 되었다. 그는 이탕이 가고자 했던 길의 끝, 즉 ‘정의의 이름으로 타락한 인간’의 결과를 보여준다. 송촌의 존재는 이탕의 우발적 살인을 단순한 개인의 불운으로 남기지 않고, 사회적 윤리와 정의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이 지점에서 〈살인자ㅇ난감〉은 개인의 우연한 살인에서 출발해 사회적 질문으로 진화한다고 볼 수 있다. 송촌은 바로 그 전환을 완성하는 인물이다.
그의 서사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이다. 송촌은 공권력의 실패를 대체한 개인 정의의 끝이며, 그 끝은 구원이 아닌 파멸일 것이다. 이희준의 연기는 그 파멸의 여정을 차갑고 설득력 있게 그려내었다고 본다. 〈살인자ㅇ난감〉의 송촌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정의를 믿었던 인간이 절망 끝에 만들어낸 또 다른 신의 형상이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정의가 언제든 폭력의 얼굴로 변할 수 있다는 불편한 자각이다.
비로소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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