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텔레비전 보다 소리까지 내면서 운게 얼마만인가.

어제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어차피 가진게 없는데요'라는 대사를 듣다가 안그래도 짠한 마음에 안타까웠는데 빗장이 풀리듯 눈물이 솟았다. 지방 3인조 강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나온 세명 청년은 그 중 둘은 그마저도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읽고 쓰는 것조차 안되는, 그래도 심성 고운 이들이었다. 세명 청년은 불우한 시절을 보내며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억울한 누명에 누구하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단지 더이상 맞기 싫어서 시키는대로 범행자백을 하고 그대로 4년 6년씩 감옥에 있었다.

진범을 잡았다. 그런데 이미 판결내버린 검사와 판사는 그 진범때문에 자기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히기가 싫었다. 세명의 삶이 망가지고 있고, 죄를 지은 세명이 눈앞에 있는데도 정의의 실현보다는 자신들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진범으로 나온 세명의 청년도 극악한 범죄자들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시골사는 청년들이었다.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고, 누명을 쓴 청년들보다는 그래도 조금 나은 환경에서 엄마의 사랑을 받는 평범한 아들들이었다.

잠깐씩 보여주는 주인공 태용과 삼수의 어린시절은 누구나 그랬다고 말하고 싶지 않을만큼 씁쓸하고 외롭고 때론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엄마의 모습, 바람을 피우는 아빠의 모습 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난 엄마의 빈자리. 그래도 버젓하게 변호사가 되었고 인정받는 기자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개천에서 용이 난게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짠내나는 이들이 펼치는 정의로운 한판 승부수에 보내는 응원이 이 드라마의 시청률인 셈이다. 다행히 진범의 양심은 야욕깊은 정치가나 자기 안위에만 눈이 먼 판검사의 뒤통수를 쳤고, 자기가 가진 게 없고 진범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한 청년은 되려 고맙다고 진범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생각했다.

정말 나보다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생각보다 얼마나 많은가. 유전무죄무전유죄라며 정말 사소한 일 하나도 서로다른 잣대로 판결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환경을 깨부수며 옳다고 여기는 일을 묵묵히 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된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그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에 어떻게 해서든 힘을 보내고 싶은 심리다. 그래도 드라마니까.

한편,

같은 방송국의 다른 요일에 방송중인 '팬트하우스'는 극과 극의 모습을 선보인다. 상위 1%들의 무엇이든 짜고치는 고스톱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 절로 느끼라고 하는 것인지, 어떻게 저렇게까지 극단의 상황이 나오는지를 되묻게 되는데, 마치 SF영화를 보듯하다. 어쩌면 너무 사실적이라서 더 사실적이지 않은척 오버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멍청한 생각이 스쳤다. 순전히 자기 친자식때문이라고는 하나 그나마 정의와 선이라는 지점에 가까운 심수련이 어떻게 그 공고한 가식적인 사회에 돌을 던지는지를 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인 드라마다. 고성이 오가고 남녀사이의 아슬한 줄다리기에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얻은 부를 통해 스스로 구별짓는 계급을 자처하는 꼴사나운 모습들이 스트레스지만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의 전형이므로 시청률은 15%를 육박한다.

너무 짠해서 어쩔줄 모르겠는 이야기와 너무 기가차서 허구인 드라마라는 것에 위안삼는 이야기는 일요일을 사이에 두고 이틀씩 우리 삶에 투영되고 있다. 그래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는 삶이 뒤섞여 있지. 그럼에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돈보다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선의나 정의가 악이나 부정보다 훨씬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감상하는 바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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