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이스 호구도원, 사비사비, 울보남경의 발견과 함께 시청율 자존심을 지킨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후 '언슬전')이 순조로운 상승세를 이어가며 유종의 막을 내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후 '슬의생')시리즈의 스핀오프로 당초 지난해 방영을 예정하였지만 정부 의대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 이탈 사회적 이슈로 잠정 미뤄졌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 찾는 병원인 만큼 오히려 삶의 의미 대한 이야기를 하기 좋은 것이 바로 메디컬 드라마다. 그런데 환자보다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병원 현장을 떠나는 전공의들의 모습이 삶의 가치와 존중 되살리는 숭고한 의료인을 그리는 드라마와 인지부조화를 느끼게 하였다. 다행히 올 1월 선보인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가 큰 호응을 받았고 1년 넘게 대기상태던 '언슬전'도 드디어 올 봄 방영이 시작되었다.
당초 큰 성공을 거둔 <눈물의 여왕>후속으로 후광효과를 노렸던 것에 비해서는 아쉬운 결과지지만 시청율은 상승세를 타며 수도권기준 최고시청률 10%를 찍었다. OTT서비스 넷플릭스에서도 비영어권 줄곧 10위권 내에 머물렀으며 총 시청 시간은 113,400,000시간을 넘는다.
'언슬전'의 세계관을 연 '슬의생'은 두 개의 시즌을 거쳐 율제병원 40대 전문의 99즈를 중심으로 많은 공감을 이끌었다. 99학번 의대동기가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의로서 각자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보여준 것이다. 그외 주변 인물로 레지던트, 인턴,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들의 다양한 구성원이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에서 울고 웃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드라마 형식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부부와 형제관계, 죽음을 대하는 자세, 새생명의 탄생을 조우하는 시간 등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옴니버스로 보여주었다. 중간중간 주인공들의 개인사, 연애담 등이 연결되었다. 이미 좋은 실력을 갖추고 여기에다 사명감까지 높은 99즈 의사들의 이야기는 환자들의 일상을 뒤흔든 질병이나 사고의 두려움을 같은 눈높이에서 믿음직스럽게 어루만졌다. 그 호응만큼 99즈가 결성한 '미도와 파라솔' 밴드가 연습한 음원이 주요 음원차트에서 오랜 기간 상위권을 기록할 만큼 많은 사랑을 거두었다.
슬의생이 언슬전으로 돌아오면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매주 주말 본방사수를 하게 만들었을까?
1. 스핀오프로 세대의 확장
이번 '언슬전'은 '슬의생'의 스핀오프다. 송도 율제병원이 배경인 '슬의생'의 세계를 종로 율제병원으로 이동하였다. 전공의 이야기를 다룬만큼 산부인과 1년차 전공의들이 주인공이다. 당연히 슬의생의 어벤저스 히어로같았던 교수님들은 뒤로 물러서고 주인공들은 의학지식, 숙련도, 사회성 등 모든 능력치가 모두 급격히 낮아졌다. 마치 성공한 히어로물의 프리퀄처럼 소명을 받아들이기 전 평범하고 찌질하고 평범한 이들의 성공 가능성을 만났다.
이들 전공의들은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 음악, 패션, 연애 모두 그들 또래의 문화에 속해있다. 개인의 취향과 자유를 1인분의 의사로 수행할 수 있도록 밤잠 설치는 생활에 반납하며 현타가 쎄게 오기도 한다. 그래서 도망가는 전공의들이 있기에 단체사진은 5월에 찍는다. 그 때까지 도망갈 시간이 없어서 남게 된 전공의들은 환자들을 돌보며 스스로의 능력치를 키워나간다. 의사로서 책임감을 가지며 생활하게 되는 동기부여, 1년여 간의 성장기, 각자 가지고 있던 사회적 단점들(냉철함, 과도한 열정, 과도한 감정, 무기력함)을 작은 갈등과 봉합을 통해 장점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의사로서의 역량이 부족한만큼 다른 메디컬 드라마만큼 의학적 장면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애당초 슬의생, 슬전생은 메디컬 드라마라기 보다는 휴먼드라마가 더 적합한 소개였다. 게다가 산부인과로 한정되어 산과와 부인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기존 '슬의생'에서처럼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기는 어려웠다. 기존 숙련된 40대 교수에서 미숙한 30전후로 세대를 낮추고 전공은 산부인과에 한정한 것이다.
대신 산부인과와 협진하는 소아과, 마취과, 응급의학과와의 관계나 각 연차별 전공의들의 업그레이드, 펠로우들의 교수임용 등에 관한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다루었다. 게다가 배경으로 송도 율제와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연관성을 유지하여 율제병원을 확장하였고, 기존 등장인물들이 매회차마다 까메오로 등장하여 기존 시청자들이 '슬의생'이미지와 연관지어 '언슬전'을 곱씹게 만들었다. 몇몇 캐릭터는 기존 '슬의생'의 어설픈 모습에서 한껏 성장한 선배들로 되돌아오기도 하였다. 3년차 기은미 샘은 '슬의생'에서 그I로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갈 예정인 1년차로 나왔지만 은미테레사로 불릴만큼 자애로운 유니콘 선배가 되어있다. 물론 추선생을 골탕먹이던 얄미운 명은원선생은 레벨업한 전임의로 주요인물로 등장하였는데 그 가식적인 처세로 '언슬전'의 최강빌런으로 관심과 악담을 한껏 받았다.
2. 휴먼판타지의 스토리월드
'슬의생'에는 신경외과, 간담췌외과, 흉부외과, 소아외과, 산부인과 교수들이 주인공이었다. 회차마다 각 주인공의 환자와 환자 보호자간의 이야기가 등장하였다. 간이식을 위한 가족간 친구간의 신의, 치명적 기형아를 출산한 산모를 보호하기 위한 배려, 아이의 오랜 투병기간동안 무쇠로 살아온 모성, 뇌사상태의 아이의 장기 기증의 결정 에피소드들을 만나면서 감동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거나 슬프거나 또 어떤 때에는 과연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언슬전'에도 산부인과의 산과와 부인과의 다양한 환자들이 등장한다. 산과는 임신과 출산에 관계되고 부인과는 자궁과 난소와 관련한 질병을 치료한다. 그래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환자로 등장한다. 출산시 고부갈등, 남편의 이기적인 행태를 꼬집기도 하고 고위험 임산부, 불임 부부의 이야기도 다룬다.
나아가 간호사, 전공의생 등 병원 내 사람들의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는 '슬의생'에서도 주인공 교수들과 브로맨스 혹은 연인으로 맺어진 팰로우, 전공의, 인턴을 맛본 것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이들이 전면에 나오게 된 것이다. 전공의들은 각자 자기의 방법으로 환자와 교감하고 최선을 다한다. 몇날 며칠 머리도 감지 못하고 일을 하다가 현타가 와서 도망을 가다가도 담당 환자가 잘못되었을거라는 생각에 한달음에 돌아가기도 하고, 모든 교수들이 수술에 들어가고 없는 상황에서 칼을 들고 집도에 들어가는 긴장감을 억누르기도 하고, 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몸으로 익히고 마음으로 방법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산부인과를 선정한 이유는 삶과 죽음이 가장 실감나는 과라고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언슬전'의 마지막화에서는 응급실에서 한 암환자가 죽음을 맞이하고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던 담당의 남경이가 주저 앉아 흐느꼈다. 그러나 남경이 마음을 추스릴새도 없이 바로 응급실 다른 한편에서는 응급 출산이 진행되어 남경이는 자기 두손으로 아이를 받았다. 죽음과 삶이 한 공간에서 연속으로 일어나는 경험을 통해, 환자를 지켜내고자 한 열정이 부러져도 새로운 생명을 위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3. 시청자와 노는 트랜스미디어
신원호 PD의 '응답하라'시리즈의 흥행공식 중 하나는 남편찾기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여기저기 떡밥, 맥거핀을 뿌려놓고 시청자들이 다양한 예상을 만들어 끊임없이 서로 떠들게 만드는 전술이 더해진다. '언슬전'에서도 오이영과 구도원이 마치 창과 방패처럼 맞서는 상황에서 결국 연인으로 맺어질 것인지의 여부를 놓고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여기에 사돈관계, 같은 직장 선후배라는 연애를 시작하기에 어려운 조건이 더욱 관심을 끌었다. 결국 마취통증의학과 3년차 전공의 라이벌의 등장으로 균형이 무너지면서 5회에 오이영이 고백하고 9회에 구도원이 고백하는 식으로 착착 앞뒤가 들어맞았다. 5+9는 14인데 이들이 함께 거주하는 아파트 층수가 14층이다. 정말 겹사돈이 될까. 두 자매, 두 형제 중 하나는 사촌지간이나 혈연관계가 아닌 것은 아닐까 하는 각종 추측이 있으나 결국에 밝혀지지는 않았다.
'슬의생'에 40대 감성의 밴드 '미도와 파라솔'이 있다면, '언슬전'에는 2세대 남자 아이돌 '하이보이즈'가 있다. 극중 엄재일은 12년 전 아이돌로 활동하였으나, 해체된 후 의대에 진학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항상 1등을 차지하고 부모님이 모두 의대 교수인 금수저 의사인 사비가 이 '하이보이즈'의 찐팬이라는 것이 흥미롭게 작용하면서 물과 기름같은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실제 아이돌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수빈과 연준이 극중 엄재이로가 같은 소속팀인 '하이보이즈'로 뮤직비디오에 함께 출연하였는데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인기급상승동영상에 이름을 올리고 관심을 끌더니, 음원차트 멜론 탑100에서도 여전히 순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들 아이돌은 무려 12년만에 재결성되어 지난 23일 음악순위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출연당시 엠씨들은 12년만에 재결성한 선배로 대우를 하고 연준, 수빈, 강유석도 역시 각자 맡은 디아이, 탑키, 엄제이 캐릭터로 끝까지 임했다. 방청석을 채운 팬들도 하이보이즈를 새긴 플랜카드를 들고 미리 고지된 응원법으로 이들 '그날이 오면' 노래를 맞춰 합창했다.
설정상 하이보이즈(HI-BOYZ)는 중소엔터테인먼트 회사가 기획한 7인조 남자 아이돌이다. 2세대 아이돌답게 청량돌의 면모를 내세운 노래로 1위 후보,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지만 3년도 되지 않아 해체된 수순을 밟았다는 스토리다. 뮤직비디오의 핑크 파스텔 단벌의상, 뮤직비디오 배경의 실내 빈 공간, 노래의 구성과 전개, 안무 대형 등 2세대 중소 망돌을 철저하게 고증했다는 평가다.
유투브, 인스타그램에서 이들 투바투, 언슬전 출연자들이 '그날이 오면' 챌린지를 하거나, 강유석이 직접 음악방송을 앞두고 응원법을 알려주고, 팬덤 이름을 하이걸스로 정하고 인사법도 공개되는 등 실제 아이돌 팬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이 과몰입하게 만들었다.
강유석은 이 작품의 엄제일 전, 몇 달 전 큰 호응을 얻은 <폭삭 속았수다>에서 아이유 동생 은명이로 나왔었다. 아들 이름이 제일이었는데 커서 의사가 되었다는 댓글이 나올만큼 연이어 관심을 받게 되었다. 또한 <응답하라 1994>의 정우,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박해수,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전미도처럼 새로운 얼굴을 주연으로 내세우는 신원호PD는 이번 <언젠가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에서 정준원이라는 중고신인의 연기를 선보였다. 화려하고 완벽한 외모를 가진 오이영의 상대역인 구도원을 연기한 정준원은 오히려 어디엔가 진짜 있을 것만 같은 선배미를 갖추고 있고 때로는 허당미의 반전 매력을 찰떡같이 표현하였다.
정준원의 기존 출연작인 <VIP>, <독전>, <탈주> 등을 다시 꺼내보는 시청자들이 늘었으며, 그의 생활 연기를 높이 사서 다양한 그에서 만나보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매체, 장르와 타 작품으로 넘나들며 스토리에 몰입된 역할 놀이에 충실하기, 본체에 대한 관심 환기 등 콘텐츠 자체를 인지하도록 만드는 전방위적인 활동이 활발하게 만들어진것이다.
기본적으로 콘텐츠 자체에 대한 매력이 있고 그 콘텐츠를 주변과 공유하기 위한 건더기를 던질 줄 아는 작품이 살아남는 시대다. 전략적으로 <채널 십오야>, 까메오의 활용, 다른 매체와 장르와의 윈윈 전략 등을 통해 드라마는 편성되는 기간에만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오래 기억에 남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 생명력은 기어코 다른 방식으로 스핀오프, 시리즈 등으로 스스로의 브랜드 파워를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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