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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책방

시집 자향먹, 이 산만한 날에 시를 읽는다는 것

by feelosophy 2019.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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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살랑 부는 바람결에 자연스레 춤을 추듯 여유로운 코스모스같기도 하고,

솔향이 은은하고 듬직하고 기대고싶은 그늘을 드리우는 소나무같기도 한

예연옥 선생님의 시집이 나왔다.

 

좋은 기회로 서예를 잠깐 배우게 되었는데 차를 우리고 다과를 하는 동안 나눈 이야기가 붓으로 화선지에 선을 그은 시간보다 곱절은 큰데, 사실 그 이야기를 하러 선생님의 다묵실을 찾곤 한 듯 하다.

그 때가 바로 요즘과 같은 여름철이고, 장마철이라서 비가 정말 장대처럼 쏟아붓는 때가 있었는데, 우산을 썼지만 도통 소용이 없을만큼 거센 비속을 뚫고 생쥐골로 다묵실에서 차를 마시던 기억이라든지 보기에는 강단있을 것 같지만 알고보면 속이 여리군요... 라며 내 본성을 꿰뚫어버린 이후 무장해제된 기억이라든지, 얼마 되지 않은 제자에게 애정어린 수묵화를 수놓은 부채를 선물하시던 단아한 미소라든지, 인사동 전시에서 신새대 감성을 화선지에 녹여놓은 작품을 대할 때라든지...

시집 자향먹, 딸 손솜씨와 콜라보로 진행된 북콘서트도 흥미로웠다.

 

이 시집을 읽으며 여러 이미지가 머리속을 지나갔다.

책 표지에는 이른 문구가 적혀있다.

'마음의 균형을 잡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비우는 아픔으로 처년의 흔적을 새긴다.'

백년이면 오래 살았다는 인간이 천년의 흔적을 새긴다는 것은 자못 큰 과업이건만 이 선생님의 글이라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서화에 애정과 열정을 가진 분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온 문구를 직접 쓰신 글씨가 아닌 활자로 대했는데도 이렇게 좋다.

 

시 중에 특히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가 있었는데 여러 생각이 오갔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는 나의 생활에 더해져서 두껍고 복잡하고 때로는 괴로울 때가 있는데, 그럴 수록 부모님 생각이 더 많이 났다. 당신들도 나를 낳고 키우면서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었겠지. 당신들에게 나는 얼마만큼의 기쁨을 드렸던가.

이번 휴가에 친정 부모님과 멀리 사는 동생네가 잠깐 들어온 김에 짧은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엄마 아빠께 더 좋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산만한 와중에

얇고 글수가 적은 시집은 마음을 다스리기에 정말 제격이다.

영상과 다른 텍스트의 묘미가 있고, 소설과 다른 상징이 있어서

나의 상황과 나의 맥락에 맞춰 얼마든지 깊고 넓게 해석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가끔은 단어 하나,

한구절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다짐을 세우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이 시집 <자향먹>에서 강하면서 온화한 마음가짐을 새겨보려고 한다.

친필싸인본, 잘 보관해야지.

 

비로소 책방지기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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